감상글(책)

<에세이>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톰소여와허크 2017. 12. 3. 08:06




이주영(글,그림),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나비클럽, 2017.


- 출판사 나비클럽의 첫 번째 책이란다. 책을 펴낸이는 저자와 친구 사이다. 굳이 이를 밝히는 것은 이 책의 주된 내용이 저자의 삶 곳곳에 등장하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과 프랑스를 오가는 저자가 서울에서 반갑게 만나는 친구 중에 한 명은 연경이다. 학창 시절, “연경이 내 이름을 물어 본 순간부터 왠지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 옆에서, 소리 내어 웃고 쉬는 시간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연경이 그랬듯이 먼저 말을 건네고, 그 친구를 알아주는 거. 이후 저자가 친구를 많이 두는 비결이다.

저자의 제일 가까운 친구는 이탈리아 유학 때 만난 남편 에두아르다. 찢어진 비닐봉지에 책을 잔뜩 넣어 다니는 모습이 싫지 않았나 보다. 가방을 자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사람, 예술과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어쩌면 에두아르도 저자에게 비슷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두 사람은 현재, 모네와 르누아르가 산책했을 거리 어느 쯤엔가 살림집이 있나 보다. 저자의 뜻에 에두아르가 흔쾌히 따라준 거다.

여기서도 소소한 갈등은 있다. 신사 같은 에두아르도 남 험담을 하면서 실망을 줄 때가 있고, 저자 스스로도 프랑스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 시련이 많다. 언어 소통이 어려운 가운데 남편의 도움 없이 은행 통장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해야 할 일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다 할 수 있다. 인생, 그냥 가는 거다”라고 독백한다. 일본으로,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건너간 각각의 사정이 있지만, 그 삶의 궤적에는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좀더 정확히는, 두려워하면서도 시작하는) 마음이 깔려있지 않나 싶은 거다.

일본 유학 시절, 명건과의 만남도 명랑하면서도 동화적이기까지 하다. 저자가 빠듯한 형편에 일본인 친구의 초대를 받았으나 선물을 마련할 수 없어서 초대에 응하지 못하자, 명건이 저도 어려운 형편에 몸을 재게 놀려 돈을 장만해주는 흑기사 역할을 한다. 하루는 저자가 즐기지 않는 콜라를 두고 갔는데,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콜라밖에 없었어”라는 말로 저자를 찡하게 만든다. 저자가 먹지도 않는 콜라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친구는 뭘까? 저자는 글의 말미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대신한다. 자기의 비밀스런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사이,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은 사이로 지나치게 친구를 좁혀 보는 게 진정한 친구를 꼽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함을 지적하면서, “친구가 없는 것은 힘든 시절 같이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라며, 친구를 “만만하고 편안한 존재”로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맘에 안 드는 면이 보이면 대놓고 맘에 안 든다고 말할 수 있는 편한 관계가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말도 덧붙인다.

친구야말로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길동무고, 네트워크고, 지도였다는 말을 끝으로 저자의 그림인 표지화를 다시 본다. 낯선 곳에서 창밖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창턱에 화병이나, 지붕 위에 고양이 한 마리 있을 법한데 그저 조용하고 쓸쓸할 뿐이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자기 혼자 견디는 시간, 자신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소중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