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박대헌,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열화당, 1999.
- 장정은 책 내용을 돋보이게 꾸미는 것으로 속지를 보호해주는 역할과 함께 그 자체로 작품이기도 하다.
이상은 친구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8년 책으로 출판될 때에는 정현웅이 장정)을 연재할 때 삽화를 그렸을 정도로 그림에 출중했다. 이상은 또한 자신과 친하게 교류했던 선배, 김기림의 『기상도』를 직접 장정해준다. “암회색 종이를 씌우고, 그보다 조금 밝은 색의 종이띠를 앞뒤 두 개씩 덧붙였다”고 했는데, 두 띠가 김기림과 이상의 우정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상이 자신의 책을 엮지 못하고 죽자, 『이상 선집』(1949)을 엮는 책임을 김기림이 기꺼이 맡았다.
장정을 다룬 이 책에서 이태준의 『무서록』(1941),『돌다리』(1943)의 장정이 유난히 환한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은 서로 이웃하며 교류했던 벗이며 글도, 취미도 비슷했다. 무서록의 수선화와 돌다리의 석류가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유다.
김용준을 따르며 성북동 집을 물려받았던 김환기도 다수의 장정을 남겼다. 김동인의 『화랑도』, 계용묵의 『별을 헨다』의 장정에서 항아리를 즐겨 그렸던 김환기의 모습을 보는데, 장정 그림에선 조금 더 장난기가 있어 보인다.
이 책 표지는 정지용의 『문학독본』(1948)장정을 빌려왔다. 화가 길진섭의 그림이다. 책 뒷면의 물방울 안에 출판사 이름 ‘박문’을 한 번 더 넣은 게 재미있다. 문(文)이 널리, 깊이 사랑받는 세상이면 좋았을 텐데, 이상은 요절하고, 김환기는 떠나고, 박태원도 정지용도 길진섭도 김기림도 이태준도 김용준도 정현웅도 남한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책 말미에 적힌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누렇게 바래고 만지면 바스러지기 십상이 되어 버린 이 책들은, 비록 궁핍한 시대에 만든 이의 의도대로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지만, 차가운 컴퓨터 화면 속에서 만들어져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금의 책들과 비교하면, 하나하나 정성들인 손길이 그래도 배어 있어 보다 따뜻하다.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친구나 선후배의 부탁으로 이루어졌던 장정들은 그들 사이의 애정이 느껴져 인간적이다”라고.
지금도 장정에 대한 고민이 왜 없을까마는 “그들 사이의 애정이 느껴져 인간적이다”라는 평을 얻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