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편 들어줘 고마워요
한일수, 『내 편 들어줘 고마워요』』, 유리창, 2017.
- 한의사이기도 한 저자가 서문에 인용하기도 한《통속한의학원론》(1934년)엔 “삼십이 되어서 한의학서를 처음 펴보게 된 것은 한의학이 대중의료에 가장 공헌이 많은데도 쇠퇴해가는 것이 애석했기 때문이다”라는 조헌영(조지훈 시인의 아버지) 선생의 말이 서두에 나오나 보다. 1935년 조선어표준말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할 만큼 국어와 문장에도 능했을 조헌영 선생처럼 저자도 글쓰기를 부전공했는지 전공 지식을 쉽게 풀어서 잘도 쓴다.
책의 제목처럼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환자의 입장을 지지해주고 편들어주는 게 소통의 지름길이며 치료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걸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꼭, 의사와 환자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겠다. 너무 자기 생각에 골몰해서 아니면, 피곤해서 그것도 아니면, 의도적으로 남을 헤아려주지 않으면서 관계를 그르치는 경우가 적잖다.
책 내용 중 편들어주기가 잘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 하나씩만 보자. 다리가 불편한 환자가 횡단보도를 천천히 걷는다.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운전사가 경적을 울리는 걸 마침 외출 중인 저자가 본다. 머리 뚜껑이 열린 저자는 운전사에게 고만한 배려도 없냐고 불같이 화를 낸다. 아마도 “기혈이 부족한 사람이 많다”는 소음인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 덕에 환자의 마음을 샀으니 설령, 운전사에게 막소리 듣는다 하더라도 거기에 비할 수 없는 더 큰 소득이 있는 거다. 반대의 경우는 행색이 남루한 환자에게 비용 이야기를 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동료 의사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족한 성적표를 들고 아버지로부터 잊을 수 없는 볼멘소리를 들은 걸 회상한다. 이후 자신의 과잉행동이나 알은척하는 버릇을 그때의 아버지 말씀에 원인을 두고 있으니 그 상처가 깊었겠다. 해서는 안 될 말을 줄이고, 만약,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면 다음에 그러지 않도록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엔 어떤 병엔 어떤 처방이라는 지식도 있지만 그보다 마음을 읽어주고 치유해주는 기능이 더 큰 듯하다. 실제 병이란 게 마음과 무관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구박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세상에서 당신 편 들어줄 제일 가까운 사람이 당신 아닌가”라는 말처럼 나의 아군을 홀대하고 전열을 정비한들 그게 제대로 될까 싶다. 개인의 마음은 그렇다 하더라도 질병의 더 큰 이유는 개인보다 사회에 있다는 의견도 있을 텐데, 아래 글은 그 점에 대해서 시원하게 짚어주는 느낌이 있다.
“우리는 아직도 70년대식의 노동윤리와 도덕에 젖어 있다. 근면과 성실이 최고의 미덕이다. 정년 보장도 안 해주면서, 비정규직에 정규직 임금의 1/3을 겨우 주면서, 소처럼 일하기를 바란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미래는 절대적으로 캄캄하다고 확신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불평등하게 대하는 게 사회적으로 널리 용납되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단 말인가. 비정규직이나 나쁜 일자리 문제는 경제 이전의 평등과 건강과 인간 존엄의 문제이다”
저자는 “기가 부족하면 자연히 몸이 냉해진다”고 했는데, 책을 읽음으로써 몸의 온도가 1도 정도 상승된 걸 느낀다. 나머지 기는 누가 내 편을 들어주거나 아니면 내가 당신 편을 들어주면서 보완하면 될 문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