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행자의 미술관
박준, 『여행자의 미술관』, 어바웃어북, 2016.
이 책은 지구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서 그때의 인상과 주목했던 그림을 소개한 그림 여행 이야기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달리의 <기억의 지속>을 만났을 때는 녹은 치즈처럼 흐물흐물해진 시계를 보며 시간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형편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듯,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여겨진다. 인간은 시간을 만진다. 여행의 기억도 그렇다”고 하는데, 같은 시간대에 있어도 각자 다르게 시간을 잡고 각자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거다. 그 다름이 가치를 생산하거나 새로운 창조로 연결될 때 작품이 되는 것이지만 그 가치나 창조에 대한 평가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어린 소녀에 대한 연구>를 만난다. 저자는 잠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헷갈려 한다. 베르메르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로도 알려진 작가지만,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좁은 집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그려냈다”고 저자는 적는다. 화가 그림에서 종종 목격되는 지도와 중국 도자기로 보건대 화가 역시 세상 저편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화가는 죽고 없지만, 화가의 그림이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하니 화가의 꿈도 절반은 이뤄진 셈이다.
저자는 에센, 촐페라인 탄광에 와서 우리나라 정선과 태백 지역의 탄광을 생각한다. 탄광 문을 닫은 것은 동일하지만 촐페라인은 문화에 방점을 찍고 탄광 시설을 디자인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으로 재단장한다. 반면에, 정선과 태백의 탄광은 카지노와 관련 편의시설로 바뀌어 유흥과 도박의 도시가 되었다. 저자는 두 도시의 아이들을 떠올려보며 어느 쪽이 나은지 생각해볼 시간을 준다.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야외 전시된 빨간색 폭탄을 보면서 저자는 전쟁을 환기하는 작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다가 작품 제목이 사랑과 속죄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심장(Sacred Heart, 제프 쿤)>인 것을 알고 자신의 선입견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의 선입견이 진실에 더 가깝지 않느냐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실제 폭격이 이루어지고 희생자가 이어지고 있는 이 지역의 참상을 장난스럽게 표현한 걸로 비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거꾸로, 같은 작품을 두고 무시무시한 폭탄에 사랑을 입힌 걸로 긍정적으로 여길 여지도 분명 있다. 제프 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겠지만 어쨌든, 이 판단의 주체는 온전히 독자 몫이다.
여행자의 시각은 이 시간에, 이 지역에, 이 사람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서 더 그럴듯한 면이 많지만 베르메르처럼 상상으로 여행하는 것도 차선이 될 줄 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