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헌책방에 얽힌 추억
이승하,『헌책방에 얽힌 추억』, 모아드림,2002.
- 이승하 시인의 에세이와 독서 칼럼을 모은 책으로 그동안 시편으로, 몇몇 기고문으로 짐작해왔던 시인의 성장 환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된다.
시인은 김천의 기찻길 옆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부모의 불화와 아버지의 화풀이로 집에 있기가 괴롭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준 것이 초등 5학년 때부터 다니게 된 김천 문화원 내부의 시립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이 내게는 보물 창고요 마법의 동굴이요 신비의 나라였다”고 했고, 60권짜리 세계명작을 다 읽으며, “내가 살던 집은 햇볕이 한 뼘도 들지 않는 지하실이었지만(1층은 부모가 문방구 운영) 나는 책가방 속에 그 찬란한 세계를 넣고 다녔다”고 했다. 조금은 과장스럽게 낯익은 찬사를 몇 번씩이나 하는 것은 그만큼 소년 이승하에게 책이 주는 위안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시절, 김천 삼각지 로터리 부근 헌책방에서 《학원》에 심취했던 것이 시인의 이후 삶을 결정짓는 순간이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도피처로 선택한 책방과 책 읽기로 인해 어둠과 불안 속에서도 영혼은 성숙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가정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 시인은 몇 번의 가출이 있었고, 끝내 그런 선택조차 못했던 여동생은 고스란히 어둔 기운을 혼자 받으면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시인은 여동생에게 늘 빚진 마음으로 산다.
초등 5학년은 내가 대구 시내의 중앙도서관을 다니게 된 시기와도 일치한다. 당시로는 꽤 먼 거리였지만 주말마다 찾아서 만화책을 먼저 섭렵하고 더 읽을 만화책이 없자 동화나 소설에도 손을 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집에 아이도 가까운 범어도서관을 다니고 있지만, 책에 대한 굶주림은 그렇게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이사 가지 않는 이유가 도서관이 가까이 있어서란다.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데려간 도서관이 자기를 키웠다고 말하게 되길 기대하고 또 그렇게 권하고 있다.
시인이 소개한 책에서, 『책그림책』을 메모해 둔다. 화가 크빈트 부흐홀츠가 자신의 그림을 작가에게 보내서 그림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를 청탁하게 되고, 42인의 작가가 동조해서 그림책을 낸 것이니 기획과 내용이 특별해 보이긴 한다. 시인은 글보다 그림이 낫다는 평과 함께, 부흐홀츠의 의도를 이렇게 읽는다. “우리 모두 책을 애인처럼 위하고 자식처럼 돌보자고. 늘 곁에 두고 애지중지하며 읽자고”.
끝으로, 시인이 즐겨본다는 잡지를 소개하자. 『녹색평론』이다. 운전을 배우지 않게 하는 책이란다. 녹색평론은 대구에서 1991년 창간되어 2008년 서울로 사무실을 옮겨갔지만, 범어동 그 자리 2층엔 책을 읽고 내는 출판사 ‘한티재’, 그 지하엔 복합문화공간‘물레 책방’이 이어가고 있으니 시인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흐뭇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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