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별아 내 가슴에 / 김남주

톰소여와허크 2018. 1. 18. 16:15




별아 내 가슴에 / 김남주

학생들은 싸우고 있는데 바로 아래층에서
사흘 나흘 밥을 거부하며 싸우고 있는데
나는 위층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그들보다 넓은 공간에서 그들보다 많은 책을 쌓아놓고

밥을 입에 퍼담기는 하지만 그러나 넘어가지를 않는다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리고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인다
산다는 게 이런 것이냐-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나 철창에 선다 멀리 침묵의 산이 보이고
청천하늘에는 잔별도 많고 이내 가슴에는 수심도 많고……
정말이지 산다는 게 이런 것이더냐-

대답해 다오 별아 내 가슴에
깜빡깜빡 알 수 없는 눈짓의 신호만 보내지 말고
고개를 끄덕여 주든지 설레설레 가로저어 주든지
내가 묻는 물음에 대답해 다오 침묵의 산아

“지는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감옥에서 특히 첫 싸움에서는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지지 않기 위해서는
싸움의 스물네 가지 측면을 검토해야 하고
준비 없는 싸움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내가 세운 이 원칙이
악화된 처우의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는
학생들의 싸움에 연대하지 않는 이유가 되겠느냐
내가 선뜻 이 싸움에 나서지 못하고 결단을 보류한 것은
그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냐
싸우다가 지기라도 하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그것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냐

어느 쪽이냐 별아 대답해 다오
불허 목록 철폐하라!
운동시간 연장하라!
독재정권 타도하자!
외치며 철문을 차며 싸우고 있는데
사흘 나흘 굶어가며 아래층에서는 싸우고 있는데
위층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나는
어느 쪽이냐 침묵의 산아 대답해 다오

- 『조국은 하나다』, 남풍출판사, 1988.

 

* 김남주 시인은 1988년 12월이 되어서야 9년여 투옥 생활을 끝으로 가석방 되었으니, 이 시집은 그 전에 묶여 나왔을 것이다.

김남주 시인은 시인이란 이름보다 전사(戰士)란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혁명가로서 자기 자신을 잊은 적이 없었”(「전사1」에서)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전사2」에서)이다. 전사를 자처하기 가장 어려웠을 시절에 전사가 되고자 했기에 김남주의 육성은 강한 울림을 준다. 그런 그도 고문에 대한 두려움이나 후유증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는지, 자신의 소원을 “신체의 자유만이라도 고문의 공포 없이 누리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한번 살고 갔으면 하는 것”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에서)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위 시에서도 전사가 불의만 보면 무조건 싸우는 사람이 아님을 말해준다. 전사의 내면에 고민이 많다. 시를 보면, 감옥에 들어온 일단의 학생들이 감옥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하는 모습이다. 독재정권 타도에 대한 구호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운동권 후배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운동시간을 늘여 달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구에 대해서는 앞의 김남주 에세이 책에 구체적 장면이 나온다. 아내에게 보내는 옥중서신의 일부다.

“대부분의 책이 불허되는 것이 이곳 실정이지만 (략) 그들이 감추고 지우고 가위질하고 찢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참 기가 막혀서…… 자유라든가, 해방이라든가, 민족이라든가, 통일이라든가, 노동이라든가, 민주주의라든가 하는 말들입니다.”

“오후 한 시, 감옥의 운동시간입니다. 이 시간만큼 이른바 죄수들에게 귀중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은 없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순간을 일 분 일 초라도 더 늘이기 위해 감옥측과 끊임없이 싸운답니다.

오늘의 이 운동시간은 별나게 고귀하고 신나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30분 운동시간에서 5분을 더 늘이기 위해 그동안 일주일 동안 0.7평짜리 감방에서 한 순간도 나오지 못하고 단식투쟁을 했으니까요. 단 5분의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 일주일 단식이라!”

인용 내용만 보면, 학생들이 시위하며 목소리 내고 있는 것들은 시인이 늘 내던 목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시인은 왜, 바로 동참하기를 주저하는가? 시인은 “지는 싸움”에 힘을 보태기 싫다는 데서 자신이 나서지 않는 이유의 근거 하나를 찾는다. 하지만, 이는 변명조에 가깝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감옥 선배로서 또, 이전의 투쟁 결과로서 신참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게 문제다. 불허 속에서도 시인이 책을 읽는 것을 크게 간여하지 않았거나, 몰래 챙긴 연필 한 자루를 눈감아 주기도 했을 것인데 이참에 학생들을 거들었다가 징벌방에 가거나 목숨 같은 책과 연필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 세운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내 가슴에 수심도 많다”는 민요 한 가락처럼 마음이 복잡하긴 했을 것이나 그런 자신을 무섭게 돌아보며 혼신의 힘으로 전사이고자 했던 시인의 선택은 자명했을 것이다. 그럼, 작은 이익에 골몰하지 않고 큰 혜택에 흐트러지지 않으며, 그가 심고자 했던 “평등의 나무”(「나의 칼 나의 피」에서)를 위해 기꺼이 칼이 되고, 전사가 되고자 했던 시인의 정신에서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염무웅 선생의 답을 대신 듣는다. “내 생각에 김남주의 싸움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남이 대신하기 어려운 무기는 그의 대책없는 순결성이다”라는.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