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아니야 / 전여운
보호자 아니야 / 전여운
대구역 앞마당에서 명덕역 뒷마당까지
눈에 보이는 술집마다 내 집인 양 ‘딱 한 잔’을 외치며
중앙통이 비좁다고 너털웃음 터트리셨던 아버지
그 ‘이까짓 술 한 잔’이 불혹의 나이를 집어삼켰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뀔 동안
남편 똥오줌 받아가며 자식새끼 줄줄이 단
동갑보다 십 년 빨리 찬 서리 맞은 어머니
누룩 냄새는 백 리 전부터 고개를 흔드시다
아버지보다 먼저 하늘 한 켠 차지하셨다
똥오줌 절인 골방
그 시아버지 보며 살아온 아내
아이들이 “엄마” “아빠” 옹알거릴 때
“술 마시지 마라” “담배 피지 마라”부터 가르쳤고
“전 할아버지, 보호자 찾습니다”
요양병원 전화,
비상 훈련하듯 부리나케 달려가던 아내
아버지 돌아가신 후
매일 아침 문안 인사처럼
“술 마시지 마. 나 당신 보호자 아니야!”
- 『밥 그리고 침대』, 학이사, 2017.
* 오래전‘흔들릴 때마다 한 잔’이란 포장마차 이름을 보고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장삿속만 따진다면 ‘흔들릴 때마다 한 병’이라고 했으면 더 도움이 되었겠지만, 가여운 술꾼들의 내일을 생각한다면 한 잔이 딱 좋다. 물론 한 잔 꺾고 일어날 사람은 천연기념물만큼 귀하긴 할 거다. 흔들리는 그 포차에 들어간 기억은 없지만 이름처럼 오뎅 국물 서비스해서 소주 한 잔씩 파는 데였을 걸로 좋게 생각한다.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흔들릴 때마다 한 잔’은 감태준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1978년 시집 『몸 바뀐 사람들』에 실렸으니 내가 본 포장마차 주인은 그 시를 읽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고단한 생활에 “이리저리 풀리고,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에 매일의 한 잔 술을 사야 하는 사람, 그 중에 한 사람이 위 시의 아버지인 게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딱 한 잔”은 단지 수사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술집마다”들러 한 잔 한 잔 헤일 수 없는 잔을 쌓았으나, 그 끝이 아름답지 못했다.
술은 혼자 감당했지만 자신의 몸을 감당하지 못한 아버지는 아내와 며느리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아버지를 맡았다고 하더라도 자식된 도리로서 며느리된 도리로서 짐 져야 할 무게가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떠맡은 보호자 노릇을 기꺼운 마음으로 행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백 번 천 번 나을 것이니, 남편에게 던지는 “나 당신 보호자 아니야!”라는 말은 뼈 있는 진담으로 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이든 여러 잔이든 다 좋은 일이다. 바람 불 때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처럼 삶도 사뭇 흔들리는 일일 수도 있는데, 한 잔 술로 술술 넘어가게 된다면 술의 이점이 적잖다고 하겠다. 다만, 나 자신의 “보호자”는 ‘나’일 뿐이란 생각으로 건강도 챙겨야 할 줄 안다. 가족에게든 누구에게든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한 잔만 해야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