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조신을 만나다

톰소여와허크 2018. 2. 13. 16:54





조신*을 만나다 / 이동훈


공원 벤치에서 사내를 만났다.

출가의 사내는 출세에 대한 미련인 양

베개 대신 두툼한 사전을 머리맡에 두고 있다.

소주와 육포를 내놓았더니

몇 개 남지 않은 이빨마저 흔들린다며

소주만 몇 번 홀짝인다.

식구(食口)를 나누어 헤어지자는 아내 말을

궁싯대며 떠나왔다는 사내를,

가난과 불운을 말하며

복불복 운수에 매였다는 사내를,

차마 웃지 못하여

이빨 사이 찡긴 포 조각처럼 불편해졌다.

구구한 사정을 짚다 보면

밥이니 복(福)이니 하는 것이

생계의 최소한이라고

한 입 거리 수단(一 口 田)일 뿐이라고

사전 어느 페이지에도 걸리지 않을 글귀로 와 닿는데

암커나 씁쓸한 일은

작은 입 하나 건사 못하고

밥 때문에 사랑을 뉘우치는 것이다.

이제 밥도 복도 다 귀찮다는 듯

사내는 신문지 몇 장으로 간단하게 구겨진다.

사내를 두고 온 저녁에

어금니가 욱신욱신 아파온다.

먹는 복도 지지리 없는

출출한 그와 나를 위하여

고기 씹고 세상 씹는 이빨 힘이라도 성하기를.



* 『삼국유사』에 나오는 인물로 꿈속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으나 생활고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