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세상의 모든 지식

톰소여와허크 2018. 2. 14. 05:08





김흥식, 『세상의 모든 지식』, 서해문집, 2015 개정판.


자신의 독서 경험에서 얻은 지식에서 “세상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정한 양의 지식”을 공유하려는 마음으로 저자가 이 글을 썼다고 하니 어지간한 독서광인 줄 알겠다. 초판 머리말에서도 “인간으로서 가장 즐거운 일은 책다운 책을 읽는 것, 예술다운 예술을 즐기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책만 언급하기엔 뭔가 허전했는지, 그 자리에 예술을 채운 것이다.

실제, 책 구성은 세계사의 몇몇 장면을 소개하되, 잘 알려져 있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 잘 모르고 있지만 의미를 새겨 봐야 할 부분이 다수 있다.

방대한 이야기의 극히 일부, 미국이 언급된 대목을 훑어보자.

피사로 등 스페인 학살자에게 쫓긴 잉카인이 숨어들어간 해발 2280미터 고지의 마추픽추(나이 든 봉우리)는 1911년 예일대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발견된다. 페루로부터 1년 기한으로 반출된 마추픽추 5000여 점의 유물은 미국과 예일대의 약속 파기로 2011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유물 반환 협정에 사인하기에 이른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하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당시만 해도 13개 주에 지나지 않았다. 이 흔적은 “미국 국기에 50개 주들이 별로 표시된 것과는 달리 별 외에 13개의 줄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에나 주를 헐값에 사고, 1819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넘겨받는다. 멕시코와의 국경 분쟁 끝에 1845년에 텍사스를, 이듬해는 캘리포니아 지역을 얻는다. 1876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면서, 아이스박스 하나를 비싸게 샀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이제 득실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긴 하다. 저자는 “여하튼 미국인은 나라를 건국할 무렵부터 사업(장사란 말이 더 어울릴 듯한데)으로 시작했으니 오늘날 전 세계를 상대로 모든 문제를 장사로 귀결시키는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고 촌평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사진 한 장의 주인공은 헝가리 태생의 미국인인 로버트 카파(1913-1954)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총통의 독제에 맞선 반프랑코 병사가 기관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병사의 죽음>은 전쟁 사진의 최고봉이자 카파의 이름을 세계와 역사에 새긴 걸작이다”. 관련 사진을 검색해 보니,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라이프>지에 기고한 이 사진의 진위를 떠나서 카파는 언제든 현장에 있다가 인도차이나전쟁에서 지뢰를 밟고 죽었으니, 저자는 카파 본인의 말을 인용해 ‘충분히 가까이 간 사람’으로 그에게 엄지를 드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 시장 자체가 권력이 되고, 그 시장 경제에 편승한 매체가 사진가를 고용한다. “그렇게 고용된 사진작가 대부분은 대치하고 있는 곳에서 카파와는 반대 방향을 향해 사진기를 들이댄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잠시 멈춰 서서, 어떤 지점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은 사진가뿐만 아니라 예술가 개개인에게 필요한 덕목이겠다. 자신과 이웃을,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지 않는 지식은 즐겁지 않을뿐더러 위험천만일 수도 있으니.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