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 / 황구하
마이산 은수사
목어 / 황구하
잡아도 달아나기 마련이고
채워도 모자라기 마련이고
버팅겨도 쓰러지기 마련이고
닫아도 열리기 마련이지만
이상하다
꿈꾸는 것들은 비린내가 난다
절집에 가면 너에게 안기고 싶다 곰곰 썩어가고 싶다 숨결마저 잇닿으면 세상도 아래로 아래로 낮아질 수 있을까 네가 쏟아낸 저 바람에 감히 나를 방생할 수 있을까 마음 몇 바퀴 빙빙 돌 때 쩌렁쩌렁 절집을 울리는 푸른 물소리 오오, 지느러미 파닥이는 너의 살내음
- 『물에 뜬 달』,시와에세이,2011.
*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을 불전사물이라 한다. 아침저녁 예불 시간에 소리를 냄으로써 축생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의미가 있다. 이 중 목어가 물에 사는 것들에 대해 대표성을 갖는다고도 하지만 뭇짐승과 중생이 들려오는 소리를 가려들을 거 같지는 않다. 물고기를 위한 목어에서 목탁이 나온 것도 애초 그런 구별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반증으로 여길 수 있다.
목어는 나무 물고기다. 물고기란 단어에 이끌려 비린내를 맡는 것이 아주 특별한 상상력은 아닐 것이다. 또한, 비가 오거나 그친 후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날, 산중 절집에 들어서 안개 바다를 지나는 물고기를 보노라면 훅 끼치는 비린내를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꿈꾸는 것들은 비린내가 난다”는 대목은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별난 재미가 있다.
‘비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날콩이나 물고기, 동물의 피 따위에서 나는 맛이나 냄새가 있다’로 풀이되어 있다. 살아있는 것 혹은 그 경계에 서서 살아있음의 흔적을 강하게 풍기는 게 비린내다. 꿈이나 욕망이란 것도 생명이 빠져나간 몸에는 깃들지 않는다. 비린내는 살아있다는 아우성이다. 비린내는 생명 있는 것들이 가지는 꿈의 상승과 하강, 아름다움과 너저분함까지 날것 그대로 품는다.
인생은 꿈을 좇아 살지만 잡아도, 채워도, 버티어도 원하는 만큼 충족되지 않는 걸 시인은 감지한다. 닫고 여는 것조차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정하는 듯하다. 시인은 애써 더 잡고 채우고 버티지 않는 대신에, “세상도 아래로 아래로 낮아질 수 있을까”, “나를 방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위로 오르려는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는 소수만 잘 살고 그래서 다들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거기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마음 몇 바퀴” 돌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아래로 아래로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지기를 꿈꾼다.
시인의 꿈은, 목어가 텅 빈 속을 울리며 소망하고자 했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묻는다면, 목어의 유영을 보고 목어의 살내음을 맡고 목어의 울림을 들으면 알 거라고 구라도 좀 쳐 두련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