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톰소여와허크 2018. 3. 17. 00:22




오민석,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살림, 2017.


- 시인이며 교수이기도 한 저자가 제자들과 함께 뒷골목 주점에서 술병을 재워가며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했다. 저자는 교과서적인 꼰대 스타일을 거부하며 도발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겠다고 했다. 실제로 통념에 대한 저항,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일탈, 질서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함정과 그걸 알아차린 자의 개김 등을 쏟아내고 있으니, 나이를 따지지 않는 우정과 알콜기로 무장되었을 이들의 열기는 자못 뜨거웠겠다.

저자는 가짜 자아를 버리고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쉬운 일은 아니란다. “늘 ‘생각하면서 사는 삶’이 전제되어야 하고, 때로 위험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통념의 횡포에 저항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은 간혹 다수의 가짜 자아들에게 ‘삐딱하게 사는 삶’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남이야 뭐라고 말하건 삐딱해야 할 부분에서 삐딱한 것이야말로 정의롭고도 자유로운 삶이다”. 이는 저자가 지적 편력과 오랜 뒷골목 대화를 통해 완성해간 핵심 경구다.

‘삐딱해야 할 부분’ 하나는 이렇다. “외모를 중시하고 외모에 생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라”는 재앙 같은 일이란다. “서로의 외모에 대해 끊임없는 자의식을 갖도록 강제하는 사회는 얼마나 피곤하고 불편한가”며 문제의식을 갖고 현실을 진단한 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 깊은 딴지를 거는 것. 그런 엉터리 규범들을 자신 있게 조롱하고 삐딱하게 쳐다보는 것”을 강도 있게 주문한다. 이처럼 저자의 삐딱론은 “나쁜 규범에 저항”하고 “개기자”는 것이니, 술자리에서 졸거나 깨거나 지나치거나 하는 중에도 외워 섬길만 한 반짝이는 문장들이다.

“그는 세상이 하나의 길이 아니라 무수한 다양한 길과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 말은 한때 뒷골목 신자이며 지금껏 자발적 유목민의 삶을 사는 S를 응원하며 저자가 들려주는 얘기인데 각자의 길에서 ‘의미 있는’ 유랑에 방점을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대로 삐딱해지고 함부로 개기는 것도 그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앎에서 동력을 얻어야 한다. 저자의 주점 이야기의 상당한 밑천은 책 읽기다. 크게 돈 들이지 않고, “거인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저자가 권하는 독서법은 그의 인생철학을 닮아 ‘버텨 읽기’다. 책 내용을 의심하면서 개기면서 버티면서 따지면서 읽자는 거다. 그렇게 해서 내면화된 지식은 거인 앞에 주눅 들 일 없이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