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녁의 편도나무
이후경, 『저녁의 편도나무』, 별의별책, 2017. 1988년 올림픽이 있던 해, 봉제공장 기숙사에서 22명의 딸들이 바깥에서 닫힌 문으로 인해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때 조시를 쓴 저자의 경험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 은희, 정석, 진우를 통해서 저자는 1980년대의 공장 근로자와 운동권 및 주변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도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아픈 사연들이 하나씩 드러나게끔 하는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은희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한 남자의 아이를 세 번 지운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책임한 남자로부터 자신이 떠나오기로 결심하고 새로 애인(정석)을 사귀기도 하지만 은희는 더 살아갈 의지를 놓고 만다. 정석은 공장 안에서 기숙하던 자신의 누이가 화재로 사망한 아픔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했던 사건 그대로다. 자신처럼 그늘이 많은 은희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진우에게 누이의 정을 느꼈지만 그뿐이다. 이후, 노동운동을 거들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진우는 면회 온 여성과 인연이 되어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진우는 운동권 출신이다. 운동에 전념하지도 못하고 가정에 충실하지도 못한 채 나름의 고민을 갖고 세상을 헤쳐 가는 인물이다. 책 표지는 고흐의 ‘꽃 피는 편도나무’(Almond Blossom, 1890,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다. 아몬드나무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긴 하다. 고흐의 조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며 머리맡에 두고 보기를 바랐던 그림인 만큼 고흐의 여느 그림보다 밝고 환하다. 저자 역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인용하며 신의 존재를 알려달라는 말에 스스로 꽃을 피운 편도나무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어두운 시절에 피었던 꽃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단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삶을 두고 또 소설과 그림을 두고 ‘희망적’이란 말을 섣불리 할 수는 없다. 꽃은 환하지만 꽃이 그냥 환한 법은 없다는 사실도 동시에 생각하는 시간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