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환기재단, 2005.
김향안, 『월하(月下)의 마음』, 환기재단, 2005.
김환기와 김향안의 글을 같이 읽었다. 두 분 글에서 김용준에게 물려받은 노시산방(수화와 향안이란 부부 이름에서 한 글자씩 취하여 수향산방으로 고쳐 부름) 관련 부분과 환기 미술관에 얽힌 이야기를 발췌해서 보자..
김환기는 집을 구할 때 성북동을 권한다. 교통이 불편한 것을 탓하면 “실은 성북동이 좋다는 것은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라며 농을 하면서도 “전차 머리에까지 도보로 20분,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 성북동은 수돗물이 아니라 우물물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운다. 달도 산협의 달은 월광이 다르다”(1953)는 것을 진짜 이유로 꼽는다. 김환기의 호는 수화(樹話)인데, 두 글자가 특별한 연관을 갖지 않고 한 글자씩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비록 초라한 집일망정 수(樹)에 파묻혀 살고 싶어진다. 내 지금도 이 산골에 살고 있는 것은 막연히 그러한 점에서일 게다.(1954)”라고 밝힌다.
1944년 김환기와 김향안이 결혼 후 성북동 노시산방을 김용준(화가 겸 수필가)으로부터 물려받아 살림집으로 쓰게 된 것도 이런 성향이 있어서일 게다. 성북동의 삶이 김환기 미술의 뿌리란 생각이 든다. 그의 공전의 출세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도 성북동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김환기가 개인 미술관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해왔다는 것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래층은 극히 소규모이면서도 아주 다부진 순수 미술관을 만들어 수시로 미술공예품전을 열도록 하고, 2층은 공예미술공장을 만들어 아름다운 생활미술을 생산하게 하고, 3층엔 미술연구소를 차려 우수한 젊은 미술가들이 모여드는 종합적인 미술 생산 빌딩을 만들고 싶다”(1949)고 했고, “한 20년쯤 후에 나는 내 손으로 미술관을 지을 생각이다. 장소는 깊은 산중, 입관료는 무료로 하되 도록(圖錄)만은 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십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김환기는 생을 마감했으나 김환기의 꿈은 아내 김향안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김향안은 수필 서두에 노시산방의 늙은 감나무를 땔감으로 베어낸 이야기를 한다. 전 주인 김용준이 그렇게 아끼던 나무였으니 김용준을 따르던 김환기의 마음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감나무뿐만 아니라, 김환기의 작품도 땔감이 될 위기다. “몇몇 해를 두고 골방 신세만 지고 있는 그림들 - 무시로 쥐란 놈이 쫄까 보아, 장마가 지면 곰팡이 슬까 보아 계절마다 거풍하고 먼지 털고 갖은 나의 정성을 기울여 아끼고 간직해 온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작품들 - 언제고 좋은 세상이 오면 이것들이 움직일 수 있는 남편의 좋은 앞날을 나는 얼마나 기다렸던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것들을 한 주일 나무로 바꾸려 한다”(1947)고 했으니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을 이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준다. 김환기의 그림이 이때의 위기를 넘겼는지 모르지만 이후 전쟁으로 소실된 그림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해도 수향산방에서의 삶은 김향안에게도 전혀 불만이 아니었나 보다. “종일을 시내의 먼지와 소음에 시달렸다가도 우리 집에 이르는 골짝에만 들어서면 그냥 피로가 씻은 듯이 풀어졌다. 한여름에는 모시옷을 입고 나갔다가 해질 무렵 골짝엘 들어오려면 옷이 명주처럼 풀이 죽어 버리도록 계곡은 습기가 차기도 했다. 이럴 때 골짝에는 물소리 밖에는 안 들렸다. 이 맛에 우리는 산골을 못 떠나고 산에 묻혀 살다가 난리를 겪고 아까운 계곡을 버리고 부산살이 수 년을 살았다”(1961)고 했다.
화가 아내로 살면서도 김향안은 수필도 쓰고 미술 평론도 하고 붓도 잡았다. 파리 유학도 남편보다 먼저 가서 부딪쳐 보고 남편을 불렀다. 신여성의 삶을 살았던 김향안은 “나는 모든 젊은 여성들에게 미술을 교양으로 권하고 싶다. 그 다음이 독서이다. 이 두 가지는 오늘의 젊은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자녀야 할 교양 과목일 줄 안다”(1963)고도 했다.
환기미술관의 시공과 미술관에 들어갈 그림까지 손수 챙기면서 김향안은 남편의 못다 이룬 꿈을 결실하게 해준 여성이다. 또한 김향안은 김환기를 만나기 전 이상의 아내이기도 하다. 글 말미에 이상과 관련된 몇몇 이야기를 남기는데 『종생기』의 모델이 자신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종생기를 다시 읽어봐야 무슨 얘긴지 알 수 있겠다. 환기미술관도 다녀오면 좋을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알 수 없는 세상살이와 인연이 그저 아득하지만 그림이든 글이든 다른 무엇이든 종생의 흔적을 잘 남기는 것이 허무한 세상을 건너는 방식이라고 적어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