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별곡 / 정희성
서경별곡 / 정희성
대동강 흘러서 내려가는 곳
풀빛 푸른 강 언덕 아니라도
평양서 멀지 않은 강가 어디쯤
정지상도 거기 서 있었으리
상사화 그러안은 모향산 보현사에
열없이 앉아 님 생각하다가
돌아오며 무심코 외워보는 진달래꽃
김준태가 들었는지 저어기가 영변이라고
가리키는 들녘 멀리 노을이 지데
삼수는 어디고 갑산은 어디일까
삼수갑산 내 못 가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
그 드물다는 나무를 생각하며 하이야니
눈을 맞고 서 있었을 백석
남신의주는 너무나 먼데
청천강 참 맑은 물 흘러서 가데
- 『돌아다보면 문득』, 창비, 2008.
* 대동강 부벽루에 오르면 바뀐 세상에 발을 디뎌놓을 수 없었던 이색의 ‘부벽루’를 읊조릴 만하다. 중국 사신이 물을 건너올 때마다 예서 인사를 차리고 정지상의 ‘송인’을 선보였다는데 그의 “풀빛 푸른 강 언덕”도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청천강 줄기 따라 안주, 개천을 지나 내륙으로 더 들어가면 묘향산이되, 구월산과 함께 장길산의 주무대다. 보현사는 서산대사가 활동하다가 입적한 곳이란다. 홍경래가 정주성에서, 임꺽정이 구월산에서 혁명의 불꽃을 다하게 된 것도 이 지역의 특성을 짐작케 한다. 백석의 「정주성」에 나오는 “파란 혼”을 홍경래의 난을 염두에 둔 걸로 보기도 한다.(안도현, 『백석 평전』참조)
개천시 위쪽이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이 있던 곳이고 소월과 백석의 고향인 정주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소월이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삼수갑산」에서) 노래했던 삼수와 갑산은 개마고원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라는데, 시인은 소월과 다른 이유로 “내 못 가”는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단둥을 마주하고 있는 신의주는 백석에게 삼수갑산 같은 공간이었을까. 세 들어 사는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서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으로 인해 방을 뒹굴 정도로 괴로워한다. 하지만 창밖의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그리며 다시 삶의 의욕을 다지는 모습은 독자에게 큰 위로를 준다.
시인은 2005년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 문인 방북단에 포함되어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 이후 십여 년, 남북 관계는 뒷걸음질만 친 꼴이다. 이산가족 문제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사람과 예술과 역사의 자취를 눈앞에 두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것 또한 얼마나 부당한가.
서경별곡은 이별의 노래지만 이별은 다시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열차 티켓 끊고 정주역에 내릴 수 있다면, 오산학교 앞을 거닐다가 정주성에 청배 파는 노인을 만나러 가고 싶다. 만약, 삼수와 갑산을 어떤 코스로 둘러볼 것인지 지도를 펴 놓고 고민하는 날이 온다면 배고픈 것도 잊고 응앙응앙 좋아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