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나도 명품을 먹는다 / 박봉준

톰소여와허크 2018. 8. 12. 00:05




나도 명품을 먹는다 / 박봉준


장모님이 명태순대 만드신 걸 보니

아직은 기력이 짱짱하시다

오징어순대도 잘 만들지만

팔뚝만 한 놈 뱃속에 함경도 비법을 꽉 채운

명태순대는 명품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지막이라고 만드시는 명태순대

아내는 전수받을 생각이 없는 눈치다

배 가르지 않고

아가리로 내장을 몽땅 끄집어내어

손끝마다 가시가 박힌들

자식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즐거움을 생각하면 무슨 대수겠는가

여보시오

아, 아 애비인가

전화가 오면

이 아 애비가 좋아해서

명태순대를 만드신다는 장모님

명태순대 못 만드실까 봐

해가 갈수록 걱정이다


- 『입술에 먼저 붙는 말』,문학의전당,2018.



  *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양명문, 「명태」중)

이 시를 쓴 양명문 시인은 평양 출신이다. 피란지 대구의 고전음악 감상실인 녹향에서 이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2018.4) 예술단 평양 방문에서 가수 강산에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 그대 너무 맛이 있어요 / 감사합니데이”라는 유머러스한 말을 반복하는 중에도 ‘명태’의 모든 것을 망라한 듯한 가사를 선보였다. 양명문 시인은 본인이 피란민이었다면 강산에 가수는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 2세 출신이다.

박봉준 시인 역시 북에 있던 아버지가 강원도 쪽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은 피란민 2세다. 시인은 명태를 직접 노래하는 대신, 명태가 주재료인 명태순대에 대해 집중한다. 명태는 함경도 명천 지방에서 많이 잡힌 걸로 알려져 있다. 함흥냉면과 함께 명태 요리도 꽤 유명할 텐데 백석의 「북관」을 통해 명태식해를 알았고, 이번 시를 통해 명태순대를 배운다.

장모님이 명태순대를 잘하는 것으로 보아, 함경도 사람이 많은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피란민이 아니더라도 주위의 영향을 받고 손맛을 내는 특별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경지를 확인할 수 없는 게 유감이긴 하나 사위가 명품으로 꼽는 만큼 평범한 솜씨는 아닐 것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입맛을 이어받았을 것이고, 명태순대에서 유전되어온 고향의 기운을 듬뿍 받는데다 장모님의 각별한 사랑까지 더해지니 명태순대는 최고의 음식으로 손색이 전혀 없다.

“명태순대 못 만드실까 봐 / 해가 갈수록 걱정”하는 것은 사위 사랑에 장모 걱정으로 답하는 시인의 마음이 구십 프로다. 나머지 십 프로는 오로지 명태순대 걱정으로도 들린다. 함경도까지 길이 트이면 금방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지금까지는 명태가 하늘을 나는 것보다 어려운 일로 보인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는 명태든, 먹는 즐거움을 주는 “명태순대”든 차별 없이, 분단 없이 나누어 먹을 때 명품이다. 아! 이 말도 명품 아닌지 몰라.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