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술에 대한 단상 / 김완

톰소여와허크 2018. 8. 21. 09:17





술에 대한 단상 / 김완

 

 

취함과 광기의 경계에서 문학은 태어난다고

술 깬 다음날 자위하고는 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다가 이마와 입술을 베였다

그게 다 사람 좋아하는 내 탓이었다

 

세상 모두 나를 좋아하면 잘못 산 것일 터

남은 생 좋은 이들과 함께할 시간도 부족하잖나

 

술이 한 겹 마취된 얇은 의식을 벗겨 내면

똬리를 틀고 있는 수많은 욕망과 허상들

 

항상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잖나

밖을 못 보는 우물 안 개구리 되지는 않기로 했다

 

잎이 무성한 나무가 마침내 하늘을 가리는 법

한 줌이라도 이 땅에 그늘을 만들기로 했다

 

이순을 한 해 앞둔 새해 첫 산행에서

술에도 과유불급이라는 말 귀중하다는 것 깨달았다

 

-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천년의시작, 2018.

 

 

* 제목은 술에 대한 단상이지만, 내용은 삶에 대한 태도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단상으로 가는 건 너무 거창할 뿐만 아니라 먹지도 않은 술이 깨는 느낌이 있다. , 말술 정도의 주량과 취기라면 술과 삶을 구별하지 않고 떠들어댈 거도 같지만 그런 경지는 소수에게만 허용될 뿐이다.

술자리의 직접 경험이든 들은 풍문이든 시인은 안 보면 좋을 일을 보고, 안 들으면 좋을 일을 들었나 보다. 사람을 좋아해서 경계를 두지 않은 잘못에다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 부메랑으로 화를 더 키웠을 성싶다. 급기야 세상 모두 나를 좋아하면그건 잘못 산 것이라고까지 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의 인자(仁者)를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갈등을 키우지 않는 것도 삶의 방편이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목소리를 내고 부득이 적을 얻는 것 또한 의롭다고 해야겠다.

어떤 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지만 시인은 의문을 품는다.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거다. 아예,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꽃이나 사람이나 지구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다. 그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걸 기본 윤리로 삼고, 시인이 작정했듯이 주변에 그늘을 내어주려는 마음을 다들 실천한다면 이상적인 공동체에 가까워질 것이다.

술이 자신과 타인의 욕망과 허상의 민낯을 까발리게도 하지만, 그로 인해 경계하고 조정하려는 마음을 심어주기도 한다. 술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뭐든 지나치면 모도 도도 아니고 그냥 꼬라박기로 가기 쉽다. 지난 술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주량이 있든 없든 알 일은 알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술을 좋이 걸쳐야 배움도 익는다고 적어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