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웃는 종이 / 문동만

톰소여와허크 2018. 8. 28. 19:06




웃는 종이 / 문동만

 

벽지가 마르며 다 떨어졌다

딸아이의 방만큼은 울지 않게 해주려고

우는 종이를 꾹꾹 눌러주며 종일 애써 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홍색 종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마르며 울며 떨어지는 벽지를 보며

식구들은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우는 종이가 웃는 종이가 되어버렸다

 

웃음이라는 낙법이,

비상보다는 낙법이 우리의 사상이었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덜 서운한 사람이 되려고,

실패로나 웃긴 사람이 되려고,

 

사는 것도 골계미가 될 수 있으려나

풀 먹어 잘 구겨지지 않는 벽지를 오래도록 접었다

종이배처럼 접혀지는 웃는 종이

 

거슬러온 샛강은 멀리 있었지만

젖었으나 해체되지 않는

불굴의

웃는 종이

 

-구르는 잠, 반걸음, 2018.

 

* “실패로나 웃긴 사람은 실 감아두는 도구로 웃긴 사람이 아니다. 실없은 아니, ‘없는 이런 농담으로도 남을 웃기는 사람이면 좋겠다. 물론 웃지 않은 사람에겐 난 실패자(失敗者). 말로 못 웃겨서 글로나마 웃겨 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편이다. 문동만 시인도 실패로나 웃긴 사람을 작정하고 있으니 동류일 수도 있겠다.

시인은 벽지 사건으로 실패를 맛본다. 벽지를 울지 않게 하려 했더니 울었단다. 이처럼 시인에겐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았을 성싶다. 누군 실패를 밥 먹듯이 한다는 말도 흘리지만 그렇다고 그걸 위로로 삼기도 뭐한 일이다. 다만, 시인은 실패 속에서도 실패를 면하고 있다. 낙법을 웃음으로 받는 자신 혹은 주변의 인식과 여유가 있어서다.

벽지를 울지 않게하려는 것은 곧 사랑하는 이를 울지 않게해주려는 마음과 통하는 것이지만 결국, 벽지는 울고 바닥에 떨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정성을 사고 그 실패를 가상하게 여기는 마음이 모여서 우는 종이웃는 종이가 되게 하는 기똥찬 변신을 선물한다.

삶이 실패의 연속이고 실수투성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듬는 더 큰 사랑이 있는 한 젖어도 해체되지 않고, 젖어도 건너게 되는 이치를 생각한다. 이런 발상도 어쩌면, 그간의 실패가 심어준 불굴의정신과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세상을 울게하는 시 한 편이 어렵다면 아무튼지, 너나없이 실패로나 웃긴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