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시인 백석
송준, 『시인 백석』 1-3권, 흰당나귀, 2012.
-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를 수차례 오가며 백석의 흔적을 좇은 결실인 만큼 백석에 대한 자료 측면에선 이 책이 가장 풍성해 보인다. 1,2권은 1994년에 책으로 나왔고, 3권은 2012년에 나왔으니 그 공백기가 적잖다. 백석의 만주 생활과 귀국 후 평양과 삼수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특히 아동문학에 대한 백석의 견해와 이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 등이 흥미롭게 읽힌다. 안도현의 『백석 평전』은 좀 더 간결하게 스토리를 살려 백석을 읽게 하니 두 책이 다 나름의 장점이 있다.
송준의 글에도, 안도현의 글에도 전문이 인용된 「관평의 양」(1959년)은 백석이 노동계급사상으로 개조될 것을 요구받으며 평양에서 지방으로, 대우받는 작가에서 양치기로 내몰린 상황에서 쓰인 수필이다. 그래서 눈치껏 당에 배려와 인정을 바라는 듯한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백석 문학의 정점을 보는 듯 아름다운 글이다. 한 장면만 발췌해 두자.
“어느 햇볕 따사로운 이른 봄 산 밑 감자밭에 두엄을 내노라고 소발구를 몰고 가던 나는 엄지들을 따라 방목지로 나온 수많은 새끼양들이 즐겁고 발랄하게 뜀질을 하고, 개닥질을 하고, 또 엄지들의 흉내를 내어 마른 풀잎사귀를 뜯고, 풀뿌리를 들추고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때 나도 모르게 소를 내버리고 방목지로 달려갔다. 그러자 매에에… 소리치며 놀라 달아나는 새끼양들을 붙들어 안아보고, 그 볼에 내 볼을 가져다 비비고, 등을 쓰다듬고… 이렇듯 감격에 잠겼던 것이다. 그것들은 바로 내가 탯줄을 끊은 것들이며, 그것들은 바로 내가 구정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것을 안고 따스한 난로가를 찾아갔던 것들이다. 나는 이 새끼양들이 어서 무럭무럭 자라기만 간절히 염원하며, 그것들의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온 조합의 산과 골짝과 최둑과 밭들이 한결 더 밝아 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인용한 대목만큼은 어떤 가식도 느껴지지 않는다. 거미 가족의 안녕을 생각하고 오리와 망아지와 나귀를 좋아하던 백석의 평소 모습이 다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야 너이들의 이야기판에 나도 들어/ 밤을 같이 밝히고 싶구나”(「오리」에서)라고 했던 백석이 오리 대신 양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을 거란 생각에 혼자 웃게 된다. 당과 평양으로부터 내쳐진 백석이 평양으로 돌아가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백석의 시와 글은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겨울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는 삼수에 갇혀서도 마음에 없는 글쓰기를 하는 것보다 양치기 혹은 돼지치기로 자족하는 마음을 낼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백석이 낸 소월의 기사, 제자 강소천의 시집에 써준 서시, 허준과 신현중과의 인연 등등을 두루 지나오면서 송준은 유독, 백석의 나타샤를 자처하는 김영한 여사의 역할이 미미했을 거라는 입장을 내놓아서 관심을 갖게 한다.
백석은 1996년에 작고했다. 무명의 사람처럼 특별한 기사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송준은 최정희가 죽기 전에 맨 나중에 공개한 백석의 편지를 언급하며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고이 전해진다”는 말로 마지막 장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