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박일환,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한티재,2018
- 소월이 진달래꽃에 갇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덜 읽히긴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산 학교 후배인 백석처럼 재조명을 받아 등장하는 시인도 있고, 지금 현재도 시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눈길 끄는 작품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시를 사랑할수록 소월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힘들어지는 상황이 있는 거다. 그럼에도 소월은 여느 시인보다 골수팬이 많아서 아직도 소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거나 그 이야길 듣고 싶어 한다.
소월에 한때 빠진 사람이라면, 저자(박일환 시인)의 소월 이야기도 지나치기 어렵다. 김종삼 시인이 「시인학교」에 소월을 휴학생으로 등장시킨 바 있지만 저자는 여기에 더해 김종삼이 「왕십리」나 「꿈속의 향기」에서도 “김소월을 마치 카메오처럼 등장시키고 있”단다. 김종삼이 소월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작품 해설을 곁들여 얘기해 준다. 시에서 소월을 ‘김소월 성님’으로 칭하던 김종삼은 “소월 못지않게 술을 사랑했고, 결국 술로 인한 병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소월이 원래부터 “대책 없는 술꾼”일 리 없다고 저자는 헤아린다. 『진달래꽃』 수록 126편 중에 술에 대한 언급은 1편이란 걸 근거로 삼는다. 아래 시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초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 「님과 벗」 전문
“저녁 때 흰눈은 퍼부어라”(「눈 오는 저녁」중)처럼 이 시의 결구도 꽤 낭만적이면서 흡입력이 있다. 소싯적에 이 시를 외워 읊조리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아마도, 소월 시의 전체적인 정조와 상관없이 속에 잦아 있는 것들을 밖으로 내는 듯한 기분을 맛보지 않았나 싶다. “한껏 흥에 취한 김소월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유쾌한 일이다. 하지만 이후 신이 예비한 결말은 행복이 아닌 불행 쪽”이었다. 저자는 『진달래꽃』 이후에 발표하거나 발견된 시편들을 상당 부분 소개함으로써 말년의 소월의 생각과 신변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찬 저녁」은 『진달래꽃』에 수록된 작품이지만 낯설게 읽힌다.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 더움이 없어라”는 내용처럼 어두운 정조가 강한 시로 받아들일 만한데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희망을 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 「찬 저녁」중
슬픔과 비탄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읽은 거다. 다만, 그 의지는 다소 소극적인 면도 있다고 보았다. “눈석이물이 쌓인 눈을 모두 녹이고 나올 때까지, 퍼르스럿한 달이 다시 밝고 환한 달로 떠오를 때까지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대목을 읽으며,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생각났으니 나중에라도 다시 살펴볼 일이다. 저자는 조만식 선생과의 인연 또 소월의 「물마름」과 백석의 「정주성」을 연결시켜 둘의 관계를 흥미롭게 짚어준다.
저자는 앞서 「찬 저녁」을 언급하며, “소월의 낙관성은 그것대로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 소월의 시 세계를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하나의 틀로만 묶어서 이해하려는 안일함을 돌아보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했으니, 소월의 진짜 팬이라면 ‘김소월 구하기’로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