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퇴계의 매화 사랑
김태오, 『퇴계의 매화 사랑』, 교육과학사, 2018.
저자는 학자로서의 퇴계, 건축 조경가로서의 퇴계, 매화 사랑으로서의 퇴계, 교육자로서의 퇴계에 대해 각각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소개하면서 퇴계 이황에 대한 이해를 도우면서 현재적 의미까지 되새기고 있다.
퇴계와 남명을 둘 다 사사했던 한강 정구는 스승을 좇아 매화를 아꼈다. 매화 백 그루를 심고 성주 백매원(회연서원)을 열어 매화향에 취한다. 남명 밑에서 동문했던 최영경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매화가 늦어서 복사꽃 오얏꽃과 함께 피었나 보다. 최영경의 반응은 “너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단지 백설 가득한 골짜기에서 절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복사꽃, 오얏꽃과 봄을 다투고 있으니 너의 죄는 베어 마땅”(이익, 국역성호사설)하다고 했다. 정말 심각하게 매화를 베려고 했는지, 단지 재미를 주며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나 저자는 이런 포즈를 못마땅해 한다.
아름답고 어여쁜 꽃 옥설 같은 자태인데 婥約天葩玉雪姿(작약천파옥설자)
늦은 봄에 더디 핀들 무슨 상관있으리오. 何妨春晩景遲遲(하방춘만경지지)
자세히 보니 차고 고운데다 더욱 곧고 꿋꿋하니 細看冷艶彌貞厲(세간냉염미정려)
맑은 서리 내린 언 가지에서만 피어날 필요 없네. 不必淸霜凍樹枝(불필청상동수지)
저자는 풍류의 몇 가지 속성을 격조 높은 운치, 비공리적 낭만, 물아가 하나 되는 자유, 사려 깊은 헤아림 등으로 구분한 뒤 위 시를 상대에 대한 헤아림이 아름답다고 소개한다. “혹한의 계절에 반드시 꽃을 피워야 한다고 매화에게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퇴계의 매화 풍류는 그 헤아림이 깊고 따스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퇴계선생언행록에 실린 문장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자기만 못한 자는 벗을 삼지 말라”는 공자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제자 이덕홍의 말에 퇴계는 공자의 의도는 다른 데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만약, 일체 착한 사람만 골라서 사귀려 한다면, 이 또한 치우친 행위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나쁜 사람과 함께하다가, 차츰 그 속에 빠져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엔 퇴계는 “좋은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고칠 일이다.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라고 밝힌다. 이를 옮기면서 저자는 배우는 사람이라면 못난 친구도 잘난 친구 못잖게 자기 향상의 계기가 됨을 알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정리한다.
매화에 우열을 두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착한 사람이 많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든지 하는 마음씀씀이에서 퇴계의 인간됨을 본다. 이를 따르는 직계 제자들만 해도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월천 조목, 한강 정구, 간재 이덕홍 등이 꼽힌다. 누가 퇴계와 퇴계 제자의 이야기만 간추려 그들이 주고받은 말과 글을 바탕으로 서사를 짜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영어도 까막눈인데다 한문도 그러하니 둔재를 탓할 수밖에.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둔재라고 해서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