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통
괴테(정현규 번역), 『젊은 베르터의 고통』, 1774 (을유문화사, 2010)
베르테르의 슬픔이 익숙하지만 현실음을 고려해서 베르테르 대신 ‘베르터’로, 전체 내용을 아우를 수 있도록 슬픔 대신 ‘고통’을 제목으로 썼다고 역자는 말한다.
베르터의 연인 로테. 베르터가 로테를 알았을 땐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나중에 결혼까지 한다. 베르터는 첫 만남부터 끝까지 로테에 대한 사랑에 집착한다. 거리를 두려는 로테에게 상심하고 자신에게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 베르터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 상당 부분은 스물다섯 청년 괴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괴테의 분신인 베르터는 사랑에 빠져 전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소설 속 자연과 나무에 대한 사랑도 눈에 뜨여 메모해 둔다. 보리수나무 관련 이야기다. 베르터는 시골 오두막에서 절제하며 사는 삶을 꿈꾸는 중에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발견했다며 이렇게 소개한다.
“오솔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계곡 전체가 눈앞에 펼쳐지지. 나이가 들었어도 명랑하고 호감이 가는 선량한 음식점 여주인이 포도주나 맥주, 커피를 따라 주곤 해.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교회 앞 작은 광장 위로 가지를 넓게 드리우고 있는 두 그루의 보리수야. 광장 주변으로는 농가들과 헛간, 마당이 둘러싸고 있어. 그렇듯 친숙한 장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나는 음식점에서 광장 쪽으로 나의 작은 탁자와 의자를 내오게 해서, 내가 즐겨 마시는 커피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호메로스를 읽어. 내가 어느 아름다운 오후에 처음으로 우연히 그 보리수 아래에 왔을 때 그곳은 너무나도 고적했어.”
여기서 베르터는 들판에 앉은 어린 형이 더 어린 동생을 돌보는 장면을 아름답게 생각하며 이를 스케치한다.(실제,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 시에 상당한 수준의 스케치를 여러 점 남긴다). 베르터가 로테에게 첫눈에 반할 때도 로테는 어린 동생들을 다정하게 돌보는 중이었다.
보리수나무는 베르터의 고향 마을 이정표이기도 하다.
“예전에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산책의 목적지인 동시에 한계였던 보리수 아래 나는 다시 서 보았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몰라! 당시에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행복해하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지. 그 미지의 세계에서 나는 내 마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양분을 얻길 원했으며, 갈구하는 동경하는 내 가슴을 채워 주고 만족시켜 줄 얼마나 많은 기쁨을 원했는지 몰라. 지금 나는 넓은 세상에서 돌아왔는데, 오 친구여, 얼마나 많은 소망이 헛된 결과로 끝났으며 얼마나 많은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는지! 나는 수없이 내 소망의 대상이었던 산이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여기 앉아서 저 너머를 동경했고, 내 눈에 그처럼 다정하게 비치던 숲과 계곡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었어”.
베르터의 상심은 깊어간다.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녀 없이는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려”라는 자조의 심정이 어떤 변화도 꾀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이어질 때 그는 최후를 준비한다. 유서가 된 편지에도 보리수나무가 다시 언급된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내 유해를 돌봐 달라고 쪽지로 부탁드렸습니다. 교회 묘지에 두 그루의 보리수가 있습니다. 들판 쪽을 향해 나 있는 뒤쪽 모퉁이에 말입니다. 나는 거기 잠들고 싶습니다.”
괴테 무덤에 보리수나무 한 그루 있는지 궁금하다. 없다면 직무유기다. 소설의 보리수란 단어가 괴테를 좋아했던 슈베르트의 ‘보리수(Der Lindenbaum, 뮐러 작시)’의 그 보리수라면, 우리나라의 피나무다. 전국 산사에 있는 대개의 보리수나무는 피나무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다수에게 보리수로 인정받고 있으니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역자의 주장대로 베르터가 맞다지만 다수에겐 베르테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베르테르다.
박목월 시인은 목련꽃 그늘 아래 베르테르의 편질 읽었지만, 보리수나무 아래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