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참음에 대하여 / 조영옥
약간의 참음에 대하여 / 조영옥
무릉에서 홉스굴 가는 길
나담축제로 북적이는 광장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
음식 파는 게르의 행렬
차를 멈추고 게르 사이로 사라진
운전기사가 오지 않는다
아침 먹거리 사러갔다는데
미리 먹고 오지
기다리다 지쳐 속으로 푸념을 한다
음식봉지를 들고 나타난 기사는
차를 몰고
다른 일행을 태운 차를 찾아 다녔다
길도 없는 초원을 돌아다니다
겨우 모인 차들
차를 세운 채 기사들 모두 모여
봉지에 든 음식을 나눈다
나담축제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호숄*을 먹어야 한단다
둘러서서 호숄을 나누는 그들을 보며
잠시
부끄러움과
약간의 참음에 대해 생각한다
풀을 찾아 삶을 찾아 떠다니는
혹한 속 유목의 참음은 아니더라도
주머니 속에 남은 자본의 찌꺼기
시간의 탐욕만은 털어낼 일이다
벗어던지려 찾아든 곳에서
기다림의 시간
공허한 시간의 기쁨을 누릴 일이다
따뜻한 호숄 속 양고기 같은
기름진 인정을 느낄 일이다
*호숄: 속에 양고기를 넣은 몽골식 튀김만두.
- 『일만칠천 원』, 작은숲출판사, 2015.
* 이윤 추구가 자본주의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현상을 생각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돈이고 속도가 돈이란 말이 자연스레 통용되는 것에도 별 의문을 품지 못하는 사정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하고, 시간과 속도의 굴레에서 놓여나서 이윤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인 삶의 자유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시인도 그러하다. 빈부를 가르고 부만 더 부하게 하는 자본의 속성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어 약간의 이윤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태가 결국, “자본의 찌꺼기”를 다투며 “시간의 탐욕”에 젖어든 모습이다. 시인은 이 일상을 회의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몽골에 온 것은 그 현장을 벗어나 새로운 숨결로 재충전하는 의미가 있을 텐데, 시인은 자신도 어느새 시간을 셈하며 자신들이 돈을 주고 산 권리가 지연되는 데 불평을 가졌음을 깨닫는다. 바쁜 일정을 두고 운전사가 쓴 시간을 직무유기나 낭비라고 여겼을 법도 한데, 봉지에 든 음식이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임을 알고 이전에 가졌던 감정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노동을 착취하고 나눌 줄 모르는 자본의 빠른 속도를 비판하면서 정작, 거기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약간의 참음”과 여유의 필요를 다시 느낀 것이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일만칠천 원」에서는,
“오십대 남자 새벽에 몸이 아파 119 불러 병원 갔는데 /밀린 치료비 일만칠천 원 내지 않으면 / 접수를 받지 않겠다 하여 다섯 시간 미적거리다 쓰러져 / 급성 복막염 판정 사흘 뒤 죽었다”라며 약간의 손해, 약간의 참음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자본주의 세상의 쓸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오는 설날엔 식구와 이웃 간에 약간의 여유를 작정하고 있으면 맘이 편할 듯하다. 호숄을 나누듯 정을 나누듯.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