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평전> 케터 콜비츠

톰소여와허크 2019. 3. 2. 22:11

카테리네 크라머(이순례·최영진 역), 케테 콜비츠, 실천문학사, 2004.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콜비츠. 아버지는 법관직을 그만두고 미장일을 했던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콜비츠는 대체로 부르조아의 삶을 살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고 남편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났다.

콜비츠는 1908년 마흔 살 이후, 줄곧 일기를 썼다. 이 책의 상당 부분도 일기를 인용하고 있다. 일기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언급한다. 괴테를 좋아했지만 어느 날의 일기엔 내가 그때 조그마한 괴테의 책을 한 권 들고 있었는데 책이 더럽혀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여백에다 루벤스!’라고 단번에 써넣었다며 루벤스 그림에도 호감을 보였다. 누구보다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에 크게 영향받는다. 1893년의 공연을 보고 자신의 작업에 한 획이 그어졌다고도 했다. 직조공의 빈곤과 파업과 탄압을 소재로 한 <궁핍>, <죽음>, <회의>, <직조공 행진>, <돌진>, <결말>로 이어지는 연작 여섯 작품(1893-1897)을 판화로 남겼다.

동판화 <밭 가는 사람>, <능욕>, <날을 세우고>, <지붕 밑 방에서의 무장>, <폭발>, <전투>, <잡힌 사람들> 농민전쟁연작(1903-1908)으로 콜비츠는 혁명의 여성 예술가로 인식된다. 연작의 결말은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와 유사하단다. 혁명가의 재판이 어머니의 마음속에 신념을 심어주어 빛나는 별로 박힌다는 소설 대목인데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콜비츠는 1914년 전쟁에 자원한 아들을 말리지 못했고,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는 전보를 받는다. “그때부터 나는 늙기 시작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1917년의 일기에 적는다.

목판화 전쟁연작(1922-1924)에 대해서 콜비츠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 일곱 개의 판화입니다. 그 제목은 <희생>, <지원병들>, <부모>, <과부1>, <과부2>, <어머니들>, <민중>입니다. 이 그림들은 마땅히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보시오, 우리 모두가 겪은 이 참담한 과거를”. 베를린과 쾰른에 있는 콜비츠 박물관에 판화 그림이 집중되어 있는데 그녀 소망대로 전쟁의 상처가 있는 나라만이라도 복제 그림을 주기적으로 전시하면 좋을 것이다.

청년이 손을 들어 주장하는 <전쟁은 이제 그만!> (1924)은 라이프치히 사회주의 노동운동 청소년대회가 열렸을 때 그녀가 그린 첫 포스터 그림이다. 그녀의 마지막 석판화는 전쟁이나 다른 위협으로부터 어머니가 아이들을 두 팔로 가리며 품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은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1942).

 

끝으로 192010월의 일기를 다소 길게 인용해둔다. 콜비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예술관이 압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공산주의자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주의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공산주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 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여류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을 느끼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안 그런가”.

저자 역시, 이 일기를 인용하고, “자신의 작품을 창조할 권리를 이토록 당당하게 주장한 예술가를 본 적이 있는가하고 되묻는다. 암살당한 사회주의 혁명가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는 드로잉, 동판화, 목판화가 다 있지만 베를린 콜비츠 박물관에서 본 목탄 드로잉(1919)과 목판화 그림 사진을 꺼내본다. 전쟁 반대 포스터와 함께.(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