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고무신 2 / 권정생

톰소여와허크 2019. 3. 23. 22:01




고무신 2 / 권정생

 

아버지는 오늘 장에도

돈이 모자라

검정 고무신 사 오셨다.

 

학교 길에

달수 고무신 혼자서 외롭고

 

3학년의 재달이도

5학년의 장식이도

띄엄 띄엄 검정 고무신은 외롭고

 

은하철도 999

나이키·타잔·ET(이티)

백설공주·캔디·007

 

끼리끼리 운동화

끼리끼리 걸어가면

 

어쩐지 외로워 보이던

재달이 고무신이

장식이의 검정 고무신이

더 당당하고 의젓해 보이네.

 

가난한 아버지가 사다 주신 고무신

달수는 말없이 걷는다.

말없이 걷는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1996.

 

 

* 요즘도 시골 오일장을 돌면 고무신 파는 가게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늬를 넣은 유아 고무신도 구매자가 제법 있다. 복고주의에 따른 옛것의 유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억을 사두고 싶은 마음이 지갑을 열게 한다. 신고 벗는 편리도 고무신의 장점이다.

통계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고무신 일색이었다가 1960, 70년대를 지나며 운동화로 바뀌어간 것 같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운동화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나 처음 신게 되고, 행여 닳을까 봐 집에선 다시 고무신을 꺼내 신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고무신에선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 외엔 특별한 차이를 두지 않았으나 운동화는 재질의 차이와 함께 은하철도 999나 캔디처럼 인기 만화 영화를 신발 디자인에 반영하면서 선호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른 가격 차이가 현저히 드러나는 시대를 지나게 된다. 조던이 나이키 신고 점프가 얼마큼 높아졌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이키 운동화 가격도 고공 점프하면서 1980년도 중반엔 학교에 학생들이 나이키를 신고 오지 못하게 단속하는 일도 있었다. 형편이 안 되는데 무리하게 나이키를 신으려 하거나, 아예 나이키를 신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을 배려한 면이 있다. 그깟 나이키로 우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교육적 의도도 있었지만 그렇게 단속함으로써 오히려 특정 상품의 인기가 더 올라가긴 했다.

권정생 시인은 고무신이면 어때, 사람이 중요하지 신이 중요한 게 아니야이렇게 생각하실 게 분명하다. 그래서 다들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중에도 꿋꿋하게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는 3학년 재달이와 5학년 장식이가 더 당당하고 의젓해 보이네라며 응원한다. 정작, 재달이와 장식이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달수는 생각이 다르다. 가난한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처럼 운동화를 사 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말없이의기소침해 있다.

고무신 3에 나오는 재운이의 상황은 더더욱 쓸쓸하다. 운동회를 앞두고 재운이만 체육복과 운동화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장선생님에게 재운이가 볼때기 맞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재운이는 운동회날 끝내 결석하고 만다. 자존심이 상해서다. 권정생 시인은 재운이가 고무신 신고 있었을 때/ 동무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같이 고무신 신고/ 같이 뜀박질을 했더라며/ 재운이는 외롭지 않았을 텐데동무들 모두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버리고/ 체육복 같은 것도/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재운이를 편들어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다.

유명 메이커는 신발에도 있지만, 그 신발에 따라서 별다른 대접을 받거나 대접을 못 받는 분위기를 우습게 생각하는 이의 마음에도 조용히 자리 잡아 있을 줄 안다. 가난한 아버지를 둔 재달이와 장식이, 달수와 재운이는 고무신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고무신을 다른 눈으로 보는 세상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것이니 지금쯤, 당당하고 의젓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