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2008(개정증보판)
- 권정생 선생이 잡지 등에 발표를 하고 따로 챙겨놓지 않은 글들을 권정생 말에 따르면 “구박까지 받아가면서” 김용락 시인이 애써 모아서 출판한 글이다.
서두에 나오는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는 권정생이 자신의 삶을 짧게 회고하는 내용이다. 몽실 언니의 모델이 된 인연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결핵에 걸리고 몸이 망가져서도 오히려 바깥으로 떠돌아야만 했던 지난 삶도 언급한다. 그 글 끝에,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 먹은 뱃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지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씀인 듯해도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삶을 함부로 부리려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의 말씀을 한 번 더 새기게 된다.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는 오줌 마려운 것을 경험으로 시간을 대강 알아맞히고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자연 상태에 가깝게 생활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사람 마음이 넉넉하자면 도량형의 눈금부터 넉넉해져야 한다. 요즘같이 1만분의 1밀리까지 계산해내는 세상에 인심인들 얼마나 각박하겠는가? 손대중 눈대중으로는 절대 핵폭탄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라는 말엔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핵폭탄은 쓸데없이 정밀해서 생긴 문제다. 인간 사이도 그렇게 해서 틈이 벌어지거나 아예 폭탄 맞은 것처럼 폐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선생은 <꽃을 꽃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에서 꽃에다 불순한 사상이나 종교관, 국가관을 붙이지 말란다. “부처님이든 알라이든, 예수님이든 칼을 들게 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덧붙이기를 “베를린 장벽은 사람의 손으로 쌓았다가 다시 사람의 손으로 헐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종교가 장벽이 되고,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관과 모든 사상이 장벽이 되어 인간을 해치고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과감히 헐어버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꽃을 꽃으로만 볼 수 있는 순수의 눈을 가질 때, 이 세상의 모든 장벽은 허물어져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교회 종지기로 수십 년 일했던 권정생 선생은 종교관은 진보적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교회가 권위적이 되어가거나 교회 간 차별화되는 모습을 비판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기도는 골방에 숨어서”하라는 것으로 권정생은 이해한다. “종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려는 의지이지, 종교가 요구하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바꾸는 게 아니다”라고 일침한다. “서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며 그것을 위해 피흘려 희생하신 것이다. 이 땅위의 진짜 우상과 마귀는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다”라고 선생이 결기 있게 말하는 걸 좋게 받아적어 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