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책방 풀무질
은종복, 『책방 풀무질』, 한티재, 2018.
- 인문사회 책방 이야기를 지역의 인문사회 전문 출판사인 한티재가 냈다. 한티재 아래층 지하는 인문사회 책방 ‘물레’가 십 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을 구입했던 더폴락 역시 지역의 책방으로 책방과 출판을 겸하고 있고 풀무질을 응원하는 추천글까지 썼다.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책이 결실하고 사랑받는 현실이 책방 문화 부활의 전조임은 오죽 좋을까 마는 저자가 전하는 소식은 그리 희망적이진 않다.
저자는 성균관대 앞에서 인문사회 책방을 25년 이상 운영하고 있단다. 대학 주변이나 골목에 흩어져 있던 동네 책방이 대형 중고책방과 인터넷 거래에 밀려 문을 닫거나 닫을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 책방 풀무질의 운명도 백척간두임을 숨기지 않는다.
동네 책방이 살기 위한 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간결하고 분명하다. 장기적으로는 학력중심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전제한 뒤, 동네마다 작은도서관이 밤늦게까지 운영되고, 도서관이 주체가 되어 동네 책방의 책을 정가로 사는 문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작은도서관 운영비를 동네 사람이 조금씩 내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고 했지만 제대로 운영하려면 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실, 누구든 가까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공익과 평등과 복지에 꼭 부합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는 데 세비가 쓰일 수 있도록 여론이 형성되어 그런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 주는 상상을 해본다. 애쓴 국회의원에게 책방 10프로 평생할인권을 주면 좋을 것이다. 물론, 평생 연금은 반납해서 작은도서관에 내놓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저자는 좋아하는 작가로 권정생 선생을 꼽는다.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에서 권정생이 말해왔던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세상을 안아 오는 것”,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되는 날을 맞는 것”은 고스란히 저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저자의 글쓰는 습관은 아마도 205번 버스를 타고 정독도서관에 다니던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을 성싶다. 그때 읽은 책들을 떠올리며 “난 골드문트가 되어 자유롭게 살 수도 없고, 조르바처럼 한껏 호기를 부리며 살지도 않으며,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돈에 눈이 멀어 젊은이 영혼과 자존심을 죽이는 노파를 죽일 용기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책 속에서 그런 삶을 찾으며 자위하고 있다. 내 나이 마흔일곱(2011년) 살이 되도록,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어 슬프다”. 저자는 슬프다고 했지만 그런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오기도 느껴진다.
책방 문이 열리고 옆에 책이 있는 한, 슬픔마저 자유롭게 벗고 입고 할 거 같은 예감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