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사랑법 / 강은교

톰소여와허크 2019. 7. 4. 21:38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올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위에 있다.

 

-『풀잎, 민음사, 1974.


감상 쓰지 않는 날개를 쓰게 하고, 흐르지 않는 강물이나 구름을 흐르게 하는 것이 사랑법이라고 말해도 될 텐데, 시인은 쉽게 꿈꾸지 않아도 되고, 쉽게 흐르지 않아도 된다고 거꾸로 말한다. 시인의 사랑법은 부지런을 떨지 않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인간의 목표는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좀처럼 펴지 못하는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할 수 있도록 부모와 선생이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자아실현이란 말도 스스로를 깨치고 공동체의 안녕을 돕는 데까지 나가면 좋을 텐데 개개인의 욕망을 달성하는 일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날개를 펴는 일도 결국 상대보다 더 나은 지위나 계급을 갖는 수단으로 쓰일 뿐이라는 자조가 있다. 곁에서 조력한다는 게 지나친 간섭과 압력으로 흐르는 경우도 왕왕 마주하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말로, 쓰지 않으면 더 좋을 날개를 밖으로 꺼내어 먼지만 일으키는 일도 없다곤 말 못하겠다.

시인의 사랑법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하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날개를 펴지 않으면 않은 대로,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 대로 그냥 두고 보는 사랑이다. 날개가 있든 없든, 쓰든 쓰지 않든 존재 자체를 지켜봐 주는 사랑이다. 욕망이 자신과 남을 태우고 끌지 못하도록 애써 힘쓰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머릿속에 주문처럼 남아 있는 문장을 다시 꺼내 읽는다. 좀 좋은가?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