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포옹 / 배한봉

톰소여와허크 2019. 8. 5. 17:39





포옹 / 배한봉

 

 

금방(金房) 앞 보도블록 틈에 괭이밥풀 웅크리고 있다

 

흔하디흔한 풀도 귀해서 휴대폰 카메라로 나는 사진을 찍는다

금방이 배경인 풀

 

사람들은, 풀도 보지 않고 금방만 자꾸 보고 간다

배경 좋지 않다고 한탄하던 이웃 한 사람은, 배경에 혹해 혼사 치렀다가 1년도 채 못 넘겼지만, 여전히,

 

풀 따윈 안중에 없다

 

안중에 없어서 목이 마르고 안중에 없어서 안중에 없어서 뿌리 뽑히지 않은 괭이밥을

 

햇살 몇 줄기가 꽉,

그렇게 한참, 그렇게 새파랗게 끌어안고 있다.

 

-『주남지의 새들, 천년의시작, 2017.

 

 

감상: 괭이밥은 햇빛이 닿는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어디든 잘 자란다. 어느 해인가 아마릴리스를 심어 둔 화분에 괭이밥이 오더니 몇 해째 동거하고 있다. 아마릴리스는 한두 번 꽃을 보더니 게으름만 피우며 늙어가고 있다. 평소 말라 죽기 직전에나 물 한 번 대는 주인이기에 꽃 볼 염치도 없지만 저거들도 대충 눈치 채고 꽃을 내지 않는다. 반면에 가꾸지도 않는 괭이밥은 내내 꽃을 피우며 볼 때마다 황금 미소로 마중하고 배웅하니 이만한 친구가 없다.

시인이 만난 보도블록의 괭이밥도 마침, 금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금색 꽃이 금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금 잔치 분위기일 수도 있으나 사실, 다수의 사람에게 괭이밥은 낮은 곳에 자라는 흔하디흔한풀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생이다. 괭이밥에 무심했던 사람들도 금방의 화려함에 눈부셔하며 그런 빛나는 삶을 배경으로 누리는 호사를 꿈꾸기도 한다. 자기 배경의 보잘것없음을 한탄하며 남의 배경을 부러워하고 그 배경을 좇아 전력으로 사느라 삶이 쉬 피로해진다. 그런 중에도 존재의 참다운 가치를 고민하거나 배경은 배경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시인은 일부러 괭이밥꽃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괭이밥풀이란 말을 쓴다. 꽃에만 관심을 갖는 인심에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다. 중심이든 배경이든 그런 구별심을 갖지 않고 꽃과 풀을 동등하게 인식하는 태도다. 괭이밥의 잎 모양도 똑같은 반쪽이 모여서 하트를 이루며 포옹하는 모습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배경이 아니라 평등일 것이다. 괭이밥은 안다. 배경에 현혹되지 않고, 너와 나가 평등하게 만나야만 아름다운 잎을 내고 황금의 꽃을 피우는 것임을.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