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치 / 나석중
금치 / 나석중
김치를 금치로 부를 때
서글퍼진다
금치가 나를 금치산자 같이 올려다본다
한겨울의 독거를 걱정해준
염치없이 얻어먹는 김치 굽어보며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뜨거운 밥술에 척척 걸쳐 주던
입 찢어져라 먹던 가닥김치
자꾸 생각나서
어머니 그립고
당신이 그립고
김치 같은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 『목마른 돌』, 시산맥사, 2019.
감상 – 나의 미래가 노인이라는 건 당연하고도 틀림없는 말이다. 나의 미래가 독거노인이라고 해도 특별할 건 없다. 노인의 삶이란 아이에게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어느 순간 가까운 미래가 되고 현실이 되고 만다.
노인이 되면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근력이 약해지다가 더러 바깥출입이 어려워지는 시기도 온다. 몸의 긴장뿐만 아니라 정신의 긴장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주위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전 세대는 자녀가 부양 의무를 지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한 세대 가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노인 스스로 노년의 일들을 감당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복지 시설이나 요양 병원의 도움을 받는 쪽으로 가고 있다.
노인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즉, 어떻게 하면 노년을 잘 지낼 건가에 대한 고민은 늘 필요해 보인다. 무상교육으로 어린아이들이 부모 신분이나 돈에 의해 차별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처럼 노인도 무료병원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게 행복지수를 높여 주리라 믿는다. 모두의 미래인 노인이 잘 사는 게 복지의 근본이란 생각이다.
시인도 이제 노년의 나이에 들었을 것이다.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시의 감각이 젊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나이를 거꾸로 살 수는 없다. 주민 센터나 복지관 아니면 이웃에서 편의를 봐 주어야할 독거노인으로 알려져 김치를 보내왔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사회가 당연히 행하는 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면 좋을 것이다.
시인에게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이웃의 정과 예전의 사랑까지 환기하게 하는 매개물이다. 김치가 귀하면 금치가 된다. 어떻게 보면, 밥에 김치를 얹어주는 마음이 곧 금치일 텐데 그런 김치 같은 시 한 편을 필생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단다. 그래서 시인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