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변주 / 나병춘

톰소여와허크 2019. 11. 7. 20:02




변주 / 나병춘

 

 

꽃에 사뿐 내려앉으면

화월(花月)이요

파도에 뛰어내리면

부서지는 파월(波月)이라

감나무 홍시를 탐하면

시월(柿月)이요

 

속눈썹을 서시처럼 흘기면

미월(美月)이라

술잔에서 춤추는

취월(醉月)이여

 

술잔도 달도 그림자도 더불어

적막을 흔드는

어디선가 짠하니 흐르는

애월 달기슭

 

자지러지는 애간장 속으로

침몰할거나

영원히 지지 않는

서천서역

바리데기 되어

 

-『!, 시와시학, 2019.

 

 

감상 : 애월(涯月) 바닷가에 온 시인은 술 한 잔 받아두고 달구경하는 중이었을까. 감상에 젖을 약간의 여유만 있다면 누구든 이백도 되고 소동파도 될 것이다.

시인이 표현에 변화를 꾀하며 기분을 낸 것처럼 애월의 주연은 달이다. 꽃에 든 달은 화월, 파도에 얹힌 달은 파월, 감나무에 앉은 달은 시월, 눈썹에 닿은 달은 미월이다. 미월(眉月)이 곧 미월(美月)이다. 서시는 월나라 미녀다. 속병으로 눈을 찡그려도 그게 예뻐서 주변에서 따라했단다. 서호(西湖)에 온 소동파는 서시를 염두에 두고 서호의 옅은 화장이나 서시의 짙은 화장이나 둘 다 좋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소동파가 서호를 기념하듯 나병춘 시인은 애월을 품는다. 애월의 인상은 깊고 달은 사무쳐서 온몸이 짜릿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중에 서시를 생각했던 소동파와는 다르게 시인은 바리데기를 말한다. 바리데기는 버려진 아이다. 그럼에도 원망을 접고 자기를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먼 서천까지 고생길을 마다않고 떠난다. 끝내 약물을 얻고 불멸의 신이 된 바리데기는 구원의 여성상이기도 하다.

시인은 왜, 달을 보며 바리데기를 떠올렸을까. 영원의 생을 얻고 기림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한시도 머물지 않고 길 떠나는 삶 자체에 주목한 것일까. 시인의 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겠다. 애월이 아니라도, 달이 아니더라도, 술이 아니더라도 나의 정신을 사로잡고 전류를 보내오는 것들을 한번은(아니, 몇 번은) 마주하게 될 것이니.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