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대바구니 행상 / 김정원

톰소여와허크 2019. 11. 21. 23:09




대바구니 행상 / 김정원

 

 

검정고무신 신고서 폭설에 덮인

동구 밖 한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서산에 해 지고 소리 없이 기어오는

검은 장막이 하마처럼 입을 벌리고

눈앞에서 모든 물상을 집어삼킬 때까지

 

꼭두새벽 장성역에서 조치원역으로

비둘기호 타고 떠난 어머니는

열흘째 돌아올 줄 몰랐다

 

대숲이 품에 안은 아담한 초가 처마에서

맑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고드름은 어젯밤보다 목이 길어졌고

 

차갑고 어린 내 가슴은

슬픔이 물구나무서서 자라는 고드름이었다

 

-『마음에 새긴 비문, 작은숲, 2019.

 

 

감상 박재삼 시인의 추억에서짐작해볼 수 있듯이 박재삼 시인의 어머니는 진주장터 생어물전에서 일했다. 그날 뗀 물건을 그날 처분하지 못하면 보관의 부담을 포함해서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은 생선을 이고 길거리로 나선 어머니는 밤늦도록 물건을 떨이할 때까지 골목을 돌아다녀야 했다. 골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오누이는 성큼 자라서, 당시의 어머니 심정을 헤아려보기도 한다.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이란 인상적 시구는 그 옛날의 어머니 눈물이겠지만 그때를 회상하는 시인의 슬프고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도 시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유년의 한때를 떠올리는 내용이다. 배춧잎 같은 발소리로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나 빈방에 찬밥처럼 남겨진 아이를 아프게 떠올리는 장면은 추억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이란 마무리로 서늘하고 쓸쓸한 정경을 껴입지만 그 시절이 있어서 박재삼도 기형도도 삶의 그늘이나 상처를 깊게 이해했을 것이며, 비록 병고와 요절로 삶이 순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다음 세대까지 사랑받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김정원 시인 역시, 가난 체험을 바탕으로 어머니를 회상하고 있다. 시인의 고향은 대나무가 많은 담양이다. 집 뒤편에 있는 대숲 대나무를 이용해 틈틈이 대바구니를 만들어 시장에 팔러 간 것인지, 대바구니에 팔아야 물건을 싣고 행상을 떠난 것인지 불분명하나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재미를 느끼면 그만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하루 이틀의 장보기에 그치지 않고 열흘째 돌아오지 않는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어머니를 그리는 소년의 그것이기도 하다. 얼고 녹고 다시 어는 그 정점에서 결빙한 고드름은 곧, 목을 길게 뺀 소년의 기다림이다.

노천명의 백석이 그러했고, 모딜리아니의 잔느가 그러했고, 권진규의 자소상지원의 얼굴’(1967)이 그러했듯이 점점 길게 빼는 목은 기다림과 그리움의 길이를 닮았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목은 한결같이 길다. 현실이 되지 않는 기다림은 슬픔일 수밖에 없지만 만남과 또 다른 기다림으로 바뀌어 가면서 이전의 슬픔도 덜어지거나 추억이 된다. 어쩌다, 옛날을 그리는 시늉을 할 때 목에 손이 가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