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억과 몽상
윤혁, 『기억과 몽상』, 청어, 2018.
- 작가는 박철수란 인물을 내세워 베이비부머 세대(우리나라에서는 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730만 명 정도의 출생자를 지칭함)의 애환을 그린다.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어릴 때의 추억이나 산업화 과정의 역할 등이 흥미롭게 전개되지만 주된 관심은 폭력적 상황에 대한 인지와 고발이다. 이 세대에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고, 일상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폭력인데도 불구하고 개개인은 무력하게 당할 때가 더 많다.
폭력은 모든 시기에 곳곳에서 있었다. 먼저, 학교와 담임의 폭력이다. 반강제로 책을 떠넘기고 체벌과 망신 주기로 책값을 물게 하는 담임이 있었다. 성당에서도 손찌검을 당해가면서 행사 준비를 해야 했다. 시정을 건의해도 달라지지 않는 걸 보면서, “세상은 어린 박철수 씨에게 폭력에 어느 정도 무뎌지도록,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때리는 행위를 폭력으로 느끼지 않을 것을 적당히 요구했다”은 인식을 갖는다. 고등학교 시절, 박철수는 교련 교사에게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한다. 또한 의견 표명을 항명으로 여기며 반 친구에게 마구잡이식 구타를 이어간 독일어 교사를 보며 교사의 꿈을 접는다. 신병 시절부터 구둣발과 야전삽과 각목으로 얻어터진 군 생활은 아예 공공연하게 폭력이 이루어지던 시절이다. 박철수는 자신이 부당하게 당한 폭력을 후임에게 물림하지 않는 것으로 나름의 자존을 찾는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한 박철수지만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비인간적 상황과 그 안에 내재된 폭력적 상황을 수시로 겪는다. 전화를 무례하게 받았다는 이유로 경영에서 제외된 고용주 일가에게 회사 부장이 무참하게 맞는 일도 있었다. 자신의 지위와 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면전에서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래소 사장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후임이 술을 핑계로 멱살잡이하며 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다. 사내 최우수 관리자로 선정된 그 이듬해 구조정리 대상자가 되고 만다. 실적을 내고 줄을 잡아야 살아남는 생존 현장에서 동료는 어느 순간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 박철수는 20년의 직장 생활이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얼핏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에도 그 고충이 이만한 것이다.
박철수는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를 지나왔다. 폭력은 통제와 규율 속에 내면화되기에 “약자를 완력이나 권력으로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은 어느 조직에서나 기본이었다. 폭력 진압으로 유명한 경찰, 구타로 악명 높은 군대, 갑질로 손가락질당하는 재벌 등에서는 폭력이 가장 기초적인 상식임을 다시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개인이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고분해지는 순간 폭력은 상식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박철수의 입을 빌려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를 종종 한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다고 여기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이야기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박철수 씨는 “언덕 위 행복의 나라”를 찾고 있다. 고생스럽게 가장의 역할을 다해왔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꿈이 신기루처럼 어른거린다. 아, 작가가 꾸리는 인문적 향기가 소복한 블로그 이름도 ‘언덕에서’다 (http://blog.daum.net/yoont3)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