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톰소여와허크 2020. 2. 20. 22:44

빅토르 위고(조홍식 역), 노트르담의 꼽추, 신원문화사, 2004.

 

 

1831, 서른 즈음의 위고가 쓴 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은 그 30년 후 작품이다.

1163년 공사가 시작돼 1345년 완공된 노트르담 성당은 2019년 화재로 첨탑과 지붕을 잃어버린다.

위고는 소설에서 노트르담에 대해 군데군데 상세하게 묘사해 두고 있다. 그 일부를 옮겨 적는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과도적 양식의 건축인 것이다. 작센인 건축가가 본당의 최초의 기둥들을 세우고 난 직후에 십자군이 가지고 돌아온 첨두 아치가 나타나, 원래 반원 아치밖에 얹어 놓을 수 없게 된 저 커다란 기둥 머리 위에 첨두 아치가 의젓하게 올라앉아 버린 것이었다. 첨두 아치는 그 이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성당의 나머지 부분은 그 아치에 조화되도록 건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일이라 경험도 없고 겁이 많기도 하였기 때문에 첨두 아치는 끝이 넓어지기도 했고 또 폭이 넓어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위축되어 버려, 후일의 여러 훌륭한 대성당처럼 높다랗게 위로 뻗어 끝이 뾰족한 아치가 되어 우뚝 솟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인근에 있는 육중한 로망식 기둥들의 눈치라도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더욱이 이러한 로망식에서 고딕식으로 과도적 양식의 건물은 연구의 대상으로서는 순수하게 전형적인 건물에 뒤지지 않을 만큼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건물이 보존되어 있음으로 하여 구예술에서 신예술로 완만한 변화와 양상을 확실히 엿볼 수가 있다. 반원 아치에다 첨두 아치를 접붙인 건물인 것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진귀한 견본이다. 이 존경할 만한 건물의 하나하나의 면과 하나하나의 돌이 프랑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이나 예술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건물을 돌의 교향악이라고까지 얘기한 이 책을 미리 읽었다면, 지난 여행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돌아나올 것이 아니라 센강의 퐁네프 다리나 생 미셸 다리 위를 지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을 분명 찾았을 것이다. 서운하게도, 위고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지붕과 첨탑의 원래 모습과 느낌을 이제 똑같이 재현하기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 노트르담에 있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성당 모습과 연관 지어 얘기한 부분은 좀 더 흥미롭다.

노트르담이 클로드와 카지모도라는 전혀 닮지도 않은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기묘한 운명이었다. 본능적으로 야성적이며 반인반수와 같은 카지모도로부터는 성당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높이, 그리고 당당한 전체의 구조에서 풍겨져 나오는 조화가 사랑을 받았다. 박식하고 정열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클로드로부터는 건물이 지니고 있는 의의나 신화, 그리고 숨겨져 있는 의미가 사랑을 받았다. 양피지의 문장 곳곳에 처음에 썼다가 지워 버린 문장이 여기저기 조금씩 남겨져 있는 것처럼 정면의 각양각색의 조각 밑에 드문드문 하나 둘씩 보이는 상징을 클로드는 사랑했다. 즉 대성당이 영원히 지성을 향해 내밀고 있는 수수께끼를 사랑했던 것이다.”

노트르담 부주교인 클로드는 오갈 데 없는 카지모도를 챙겨서 성당 종지기로 살게 한 은인이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만나면서 틀어진다. 사실,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삶의 주인공은 십오 세 소녀 에스메랄다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한 에스메랄다. 춤추고 싶을 때 춤추고 누구에게라도 명랑하고 솔직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연민을 보낼 줄 아는 자상한 여인이다. 클로드와 카지모도 둘 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정념에 사로잡힌다. 정작 에스메랄다는 친위대장 페뷔스만 바라본다. 에스메랄다는 시인이자 철학자인 그랑고아르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고, 목마른 카지모도에게 물을 주며 그들에게 연정을 갖게 하지만 더 이상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주교인 클로드에 대해선 두려움만 가질 뿐 끝내 그의 사랑을 거부한다. 선택을 받지 못한 그랑고아르는 에스메랄다를 구할 순간을 외면하고 염소만 구출해서 비극의 드라마 중에도 약간의 웃음을 준다. 자존심 센 클로드는 암만 구애해도 다른 남자만 바라보는 에스메랄다를 끝내 참지 못한다. 흉측한 괴물 취급을 받던 카지모도만 다른 선택을 하고, 무덤에서나마 에스메랄다의 옆자리에 눕는다.

한 쪽만 쳐다보거나 다른 쪽으로 어긋나는 맹목의 사랑이 파국을 예비하는 가운데 카지모도는 귀머거리 재판관의 엉터리 재판을 받았고, 에스메랄다는 잘못된 정보로 명을 내린 국왕의 결정으로 교수대로 몰려간다. 이러한 대목은 위정자의 오판으로 민중의 생명이 오가는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우습고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개인에겐 어찌해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폭력일 뿐이다. 사형 직전의 에스메랄다를 꼽추 카지모도가 구하는 장면을 두고,

이렇게 기괴한 인물이 불행의 밑바닥에 있는 인간을 지켜 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었다. 이 두 사람은 바로 자연과 사회의 두 극단에 서 있는 불행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서로 몸을 맞대며 서로 돕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작가 위고가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행여 화재 복구가 끝난 노트르담에 가게 되면,

그의 몸의 튀어나온 부분이 성당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꽉 끼어 버렸다고할 정도로 조금씩 건물을 닮아갔다는 꼽추 종지기의 흔적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이동훈)

 



 

* 노트르담 그림은 막시밀리언 루스(1901), 앙리 루소(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