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혹은 아프다 / 강동수
아파트 혹은 아프다 / 강동수
사람들은 그들이 지어놓은
이름 속에 갇혀 산다
스스로 지어놓은 이름은
래미안, 휠스테이트, 아크로빌
고상하고 아름다운 이름 속에
그 옛날 춘자, 영자, 말자도 살고 있다
이름이 불편한 말자, 춘자가
새로 개명한 영애 희선이가 되어
몸이 불편한 이들과 싸운다
특수학교에 다니고픈 아이들을
용서할 수 없어 싸운다
고상하지 않은 학교가 싫어
오늘도 데모를 한다
길 건너 개명하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가
몸살을 앓는다
강동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2018.
감상 –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더라도 그것이 가져올 불이익을 예상하며, 자기 지역에서만큼은 관련 시설을 들여올 수 없다는 이기적 태도를 두고 님비(NIMBY - not in my backyard) 현상이라고 부른다. 미사일 기지나 원자력 발전소, 핵 폐기장이나 쓰레기 하치장 등은 지역 주민이 떠안게 되는 위험 부담이라든지 감수해야 할 생활의 불편 정도가 뚜렷하며, 공공의 이익에 정말 부합하는지에 대한 이견도 만만찮기에 님비 현상이라고 이름하기에 주저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고아원, 양로원, 특수학교 등 사회복지 시설의 마련과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 확충엔 그 취지에 다들 공감하면서도 실제로는 님비 현상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자본주의의 민낯이자 시대의 슬픈 자화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위 시에서 시인은 이름과 개명을 통해 님비 현상을 풍자한다. 아파트 개명은 실질보다 이름과 브랜드가 실질을 대신하며 상품 가치를 올리는 배경이 있어서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아파트 상호에서 LH란 용어를 빼고 개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세보다 싸게 분양하고 임대아파트를 짓는 주체기도 한 것이 자랑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숨기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춘자와 영자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한다. 개명한 이름인 영애와 희선은 아파트 모델이기도 한 연예인 이름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파트 입주할 때 그들의 비싼 모델료까지 지불하게 될 것이지만, 아파트 쪽에선 고급스런 이미지를 팔고 입주민은 그 이미지로 자산 가치가 높아지기를 바라니 서로 불만은 없어 보인다.
개명한 춘자는 개명한 아파트에서 더 나은 삶을 기대했을 텐데, 장애인이 다닐 특수학교가 들어오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고 만다. 정확히는 손상된 이미지로 인해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때 묻지 않은 춘자와 영자 시절엔 특수학교의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잘 적응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사람의 성정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니 그 선한 마음들이 지금도 여전할 거라고 본다. 그런데 그 마음을 배신하는 일들이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 좋은 뜻에서 하는 일들을 응원하기는커녕 한사코 내 집 마당에서 안 된다고 실력 행사에 나서는 건 뭔가. 이는 한 사람의 영혼을 장악하고 조정하는 자본의 위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자본은 이미지를 소비하고 욕망을 최대한 살게 하는 밑천이다. 욕망이 클수록 자신의 자본은 빈약해 보일 것이고 은행에 저당 잡힌 불안은 가중될 것이니, 나름의 절박한 사정이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럼에도 뭣이 중한데 라는 질문은 꼭 필요해 보인다. “개명하지 않은 / 오래된 아파트”의 몸살을 빤히 보고도 제 욕망의 크기를 줄이지 않는 건 최소한의 염치를 잊은 행위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