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 김인자
무릇 / 김인자
무릇과 꽃무릇은 각기 다른 꽃이름이다
무릇은 나 새댁일 적 입었던
곱디고운 연분홍 치마저고리라면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은
기생 입술처럼 붉은 꽃으로
이들 둘은 생김새나 개화시기도 다르다
간혹 이미지는 선명하나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을 찾지 못할 때가 있는데
내겐 ‘무릇’이란 단어가 그렇다
글을 쓰다보면 무릇이 무릇으로 끝날까 봐
전전긍긍할 때가 있다
무릇, 참 대책 없는 바로 그 무릇
내가 좋아하는 무릇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간이 안 된 구름처럼
약간은 밍밍하고 또 약간은 아련함이 깃든
‘무릇’이란 그냥 그 말
-『당신이라는 갸륵』, 리토피아, 2020.
감상 – 여행 작가이기도 한 시인은 발문을 대신한 ‘시에 대한 변’에서 말하기를, “시는 삶을 통틀어 독서와 여행, 사랑과 사색, 잔잔한 일상이 투영된 총합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슬픈 농담』 이후 16년 만에 낸 시집에서도 여행과 독서와 사색의 흔적이 가득하다. 산문에서 보았던 숲과 꽃에 대한 이야기도 여전하다.
시인이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는 무릇이다. 비교 대상인 꽃무릇은 상사화로 흔히 불린다. 꼼꼼하게 따지자면, 상사화는 잎이 진 뒤 꽃이 피고, 꽃무릇(석산)은 상사화보다 늦게 꽃을 내고 꽃이 진 뒤 잎을 낸다. 두 꽃에 대해,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다른 쪽을 그리워할 거라는 인간 심리가 투영되어 상사화(相思花)라 일컫게 된 걸로 보인다. 모양새는 꽤 다르다. 선운사나 불갑사에서 무더기로 볼 수 있는 꽃은 앞의 상사화보다 붉은 색이 더 강한, “기생 입술처럼” 요염하고 화려한 꽃무릇일 때가 많다.
화려한 생김새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전설까지 더한 꽃무릇은 시쳇말로 주목받는 생의 중심에 있다. 시인은 화려한 것보다 “약간은 밍밍하고 또 약간은 아련함이 깃든” 무릇과 무릇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우리말 무릇은 대체로 그러한 것이고, 대강 헤아리는 것이다. 모질지 못하고 엄벙뗑하는 것을 두고 사람 좋다는 얘기는 할지언정 세상일이 매사 그렇게 넘어가는 건 아니라는 말도 듣는다.
시인은 글 쓰는 일만큼은 무릇이 무릇으로 끝나지 않도록 애를 쓰지만, 어쩔 수 없는 무릇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 대해 / 함부로 말하지 말고 / 야유하지 말고 / 침 뱉지 말고 / 견디고 참아야 한다 // 둘러보면 / 모두가 / 근 / 근 / 이 / 피는 / 꽃이므로”(「꽃」 중)를 읽으면, 무릇의 기질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가가 느껴진다. 다소 어정쩡함 속에 품을 너르게 갖고 사물을 대하는 게 무릇의 역설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오래전, 경주 효공왕릉 일대를 뒤덮은 무릇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래오래 쪼그려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으니 시인과 무릇으로 통한 셈이다. 꽃무릇 좋아하는 이를 말릴 생각이 전혀 없지만 무릇도 좋다고 약간은 목소리 높여 보는 거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