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그 봄비 / 박용래

톰소여와허크 2020. 3. 23. 16:53

그 봄비 / 박용래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 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강아지풀, 민음사, 1975 / 현대문학, 1969. 4

 

 

감상 박용래의 그 봄비는 그의 출세작이라 할 만한 저녁 눈과 쌍둥이 시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저녁 눈전문)

저녁 눈을 처음 접한 이동순 시인은 이 시를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서점에서 선 채로 이 작품을 옮겨 적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어서 책상머리에 붙여두고 줄곧 있었다. 넉 줄밖에 안 되는 시가 어쩌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이동순 교수의 시와 시인 이야기)

이동순은 자신의 유년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저녁 눈에서 보여준 소외된 것, 사소한 것,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연민을 높이 샀다.

이런 시각은 박용래와 가까이 지낸 후배 이문구 소설가의 박용래 약전에도 잘 드러난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이문구는 둘이 자주 만나고 함께 술 마시면서, 박용래가 울지 않는 것을 두 번밖에 못 봤다고 진실인지 과장인지 모를 애매한 말을 했다. 두만강을 떠올리며 종일 울기도 했고 마당의 시래기를 보면서 울기도 했단다. 신경림 역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에서 이문구를 중간 연락책으로 해서 박용래와 처음 만났을 때 시인이 손을 잡고 울기부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려준 바 있다.

한마디로 박용래는 눈물의 시인이다. 봄비가 오는 날, 박용래는 대전 오류동 집에 머물며,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다가 그 봄비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박용래는 은행 일과 교직 일에 한때 몸 담았지만 마흔 이후론 이렇다 할 직장을 갖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오류동의 동전신세로 빗대던 시절이다. 앞서 저녁 눈은 말집 호롱불과 조롱말 발굽에 붐볐지만 봄비는 김칫독과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고 했다. 이들 장소는 이전 시기엔 일상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익숙한, 서민들에게 가까운, 별것 아닌 장소였지만 세월 따라 점점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향수를 자아내는 곳이 되고 말았다. 박용래의 눈과 비는 꼭 그런 곳을 찾아다닌다. 저녁 눈에서 눈발이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빈다며 청각을 동원해서 변화를 준 것도 좋았지만, 그 봄비에서 봄비를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운다고 표현한 것도 감각적이다. 시각과 청각에 봄비의 움직임까지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구에 눈발이 변두리 빈터를 찾듯이, 봄비가 낡은 돌절구 바닥에 고여 넘치는 사정은 박용래가 닿아 있는 세계가 뭔지를 바로 보여준다. 가난하고 쓸쓸하고 고단한 자신과 이웃의 일상을 드러내면서도 시인은 방관자도 비판자도 아닌, 봄비처럼 가만가만 다가서서 풍경을 쓸어주는 느낌이다. 자신의 비천함을 말하는 데서 거짓 없는 서정과 생활이 투명하게 느껴지게 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에게 그의 시를 맑고 높게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언제,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봄비를 맞을 것 같으면, 박용래 시인의 눈물이나 시 한 구절 떠오를 것도 같다. (이동훈)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gobow75/100158947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