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남몰래 흐르는 눈물 31 / 김영태

톰소여와허크 2020. 3. 25. 00:43




남몰래 흐르는 눈물 31 / 김영태

 

 

탑들에 구혼하는 바람은

그녀의 허리를 감아 잡는다

네 기사(騎士)가 지나갔다

안달루시아 조랑말 타고

하늘색과 초록 옷 입고……

 

야밤에 밤참 먹듯 나는

로르카 시집을 읽었습니다

시집에 나오는 코르도바

언젠가 이틀 밤 묵었던 스페인 구시가(舊市街)

쇼팽이 를 작곡하던 그곳

코르도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초록 옷 입은

이틀 밤 묵으면서 빗소리만 듣던

그때 내 뺨을 적시던 눈물이

 

- 시전집 물거품을 마시면서 아껴가면서, 천년의시작, 2005.

 

 

감상 - 위 시의 첫 연은 시인이 읽은 로르카의 시 나무, 나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네 명의 기사는 아가씨를 코르도바로, 세 명의 투우사는 아가씨를 세비야로, 한 명의 젊은이는 아가씨를 그라나다로 한 번 오라고 꾀지만 아가씨는 들은 척 않고, 바람만 아가씨 허리를 감싼다는 얘기다.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에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까지 더하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주요 도시를 짚은 거다.

이슬람 영향 하의 알람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는 로르카의 고향이다. 여기 그라나다 대학에서 로르카는 달리를 만나 우정 이상의 연애 감정을 지닌다. 뒷날 달리는 피카소와 함께 명성을 누리지만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에 희생당하고 만다. 코르도바는 철학자 세네카의 탄생지며,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집필했다는 여관이 있는 곳이다. 세비야는 플라멩코 공연으로 이름난 곳이며,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도 이 고장 이름을 붙여서 더 유명해지긴 했다.

김영태 시인은 로르카 시집을 읽으며, 예전에 코르도바 지방을 지났던 기억을 떠올린다. 김영태 시인은 이제하 시인(소설가)과 함께 문학과지성사 시집 캐리커처를 번갈아 그렸던 화가이면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무용 평론가로 꾸준히 활약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조르주 상드와 동행해서 뭍에서 떨어진 마요르카 섬에서 작곡했다는 게 일반적인 설인데, 코르도바에도 쇼팽이 머물러 작곡을 했는지, 시인이 지명에 착각을 일으켰는지, 알면서 그렇게 쓴 것인지 숙제로 남겨둔다.

옛날을 생각하는 시인의 감정도 복합적이다. 시집 속, 안달루시아의 조랑말과 초록 옷을 입은 사람들을 통해서 뭍과 바다가 맞닿은 이베리아반도의 초록 하늘이 생각났을 것이다. 또 이틀 밤을 숙소에 머물게 하며 발목을 잡던 초록 비에 생각이 미치고, 쇼팽의 음악까지 거들면서 그때인지 지금인지 눈물을 보고 만다.

지난 기억은 대체로 그리움으로 다가오겠지만 시인은 그때 내 뺨을 적시던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 사연을 대기 어려운 막연한 눈물이라면 낭만으로 읽어도 좋겠지만 의식으로 떠올려지든 무의식에 잠겨있든 어떤 배경이 시인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개인적으로, 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까지 돈키호테의 흔적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로르카의 시 한 구절이 눈에 잡혀 적어둔다.

 

비록 나 길을 알아도

나는 코르도바에 가지 못하리.”(기수의 노래부분)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