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썽이는 행간들 / 전다형
글썽이는 행간들 / 전다형
수덕사 수국이 턱을 괴고 먼 데를 본다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이밥 한 그릇
머리를 장식한 고슬 고봉 이밥 한 송이
장식보다 잠식이란 말이 먹힐 때가 있다
잎사귀 산사 넓혀가는 밤이 있었다는 말
무성한 것들 속에는 벌도 몇 마리쯤
숨어 있을지 모르는데
올망졸망 또래끼리 흙밥 떠놓고 배웠지
소꿉놀이 한창 무르익고 뜸이 들면
즐거운 탐구생활 아이처럼 명랑하다
눈웃음이 짓는 소꿉 밥
간 맞추지 않고 볼우물 깊어진다
산마루에 앉아 수국과의 거리를 보면
울컥, 밥솥 물 넘쳐 발그레진다
목탁소리가 물소리 따라 마을로 내려가고
산사의 놀이는 그런 것, 죽네 사네 하는 것
수국과 수긍 사이
침묵과 묵언의 범람 그 언저리에서
글썽한 오늘이 평생 수국으로 살겠지
잘 사니?
불어오는 안부 창문에 붙여놓고 설렌다
안녕! 안녕? 묻는다는 것은
그대와 나 조촐한 겸상 받아놓고
밥숟가락 달그락거리고 싶다는 것
함께 잠들 수 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
꿈속에서도 살이 내린다는 것
밤낮 불어오던 오랜 안부처럼
삼삼한 계절이 행간을 몰아올 때
무조건적으로 수국이 핀다
-『사과상자의 이설』, 상상인, 2020.
감상 – 절간 한쪽에 수국이나 불두화 혹은 목수국(백당나무)을 심어놓는 경우가 많다. 생김새가 부처님 머리 같기도 하고, 시주하는 고봉밥 같기도 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수국은 바깥에 화려한 꽃이 먼저 눈길을 끌지만 사실은 꽃받침이고 그 안에 자잘하게 피는 것이 진짜 꽃이다. 개량종은 온통 헛꽃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불두화 역시 씨앗을 맺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열매가 없다 하더라도 그 또한 삶이요 존재의 한 방식인 것은 당연하다.
시인이 찾은 수덕사가 예산의 수덕사가 아닐 수 있지만, 그쪽 수덕사 정취가 생각난다. 안부를 묻는 말에 수덕사에서 중이 된 김일엽과 수덕여관에 머물며 중이 되려고 했던 나혜석, 두 동갑내기 신여성의 삶이 얼핏 떠올려진다. 남자관계에서 몇 번의 부침이 있었던 김일엽은 1927년 ‘나의 정조관’을 발표하며 정조는 사랑이 있는 동안에만 있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이 시기 유럽여행을 떠났던 나혜석은 이때 일이 문제가 되어 이혼을 당하게 되고, 1934년 ‘이혼 고백장’을 발표하면서 남녀 정조관념이 잣대가 다른 것을 비판하며 정조는 법률도 도덕도 아니고 취미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회관습이나 윤리, 혹은 윤리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두 여성의 비판적 목소리를 수용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수덕사 이름으로 인해 두 여성의 안부를 떠올려보았지만 시인이 안부를 묻는 대상은 따로 있을 것이다. 시인은 수국의 꽃 무더기를 보며, 흙으로 만든 소꿉 밥을 추억하기도 하고, 시간을 훌쩍 지나와 그대와 나 사이 “조촐한 겸상” 위의 밥을 생각하기도 한다. 밥의 온기처럼 따뜻한 기억이며, 그걸 현재화시키고 싶은 바람은 여전하지만 시인이 거듭 안부를 묻는 것에서 보듯 겸상의 상대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썽이는 행간>이 마냥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안부를 묻고 물어오는 일이, 꿈속에도 살이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결실 여부를 떠나 사랑하며 사는 모습으로 비친다. 헛꽃이든 아니든 무조건적으로 수국이 피는 것처럼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이동훈)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e-visual/22131728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