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톰소여와허크 2020. 5. 31. 01:38

강성규, 전태일 평전, 한티재, 2020.

 

 

1989전태일 평전을 복사본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해 조영래 변호사가 저자란 것이 밝혀졌지만 조영래는 자기 이름의 전태일 평전을 보지 못하고 마흔 중반의 나이로 병사한다. 평전은 전태일의 수기와 일기를 바탕으로 전태일의 어머니와 여동생 등 가족을 여러 차례 만나며 삼 년 이상 정성을 들여 쓴 책이다. 1970, 스물세 살 청년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어머니와 친구들이 앞장서기도 했지만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과 이후의 노동운동을 크게 도운 셈이다. 장기표가 취재 노트를 넘겨주었다고 하지만 조영래로 하여금 책 쓰기에 집중하게 한 것은 결국, 전태일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강성규 선생이 쓴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도 수 년 간의 정성이 담뿍 배인 책이다. 이 또한 전태일이 시킨 일이기도 할 것이다. 전태일의 또 다른 이름은 그가 책이 닳도록 외운 근로기준법, 다니는 직장마다 고용주가 지켜주기를 바랐던 근로기준법이다. 당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하루 14-16시간 근무에다, 휴일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어지기가 예사인데, 전태일이 읽은 근로기준법엔 하루 8시간 노동에 일주일에 한 번 휴일을 보장하게끔 되어 있었다. 재단사 전태일은 동지를 모아서 노동청과 언론에 사실을 알리고 고용주들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도록 요구했으나 번번이 좌절당한다.

책 말미에 전태일 연보를 이야기로 풀던 저자는, 제 몸에 불을 지르며 전태일이 냈던 구호 아닌 비명을 붉게 인용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 혹사 말라!”

 

전태일 사후, 그가 바라던 노동조합인 청계피복노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조합이 자본주와 협상하고 실력 행사도 하면서 노동시간, 근로환경, 임금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여전히 많음을 저자는 주목한다. 전태일 시대의 그늘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노동자의 삶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때와 지금을 끊임없이 연결하며 자신과 이웃에게 드린 그늘의 실체를 충분한 사료로 확인하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전태일이 마지막을 보냈던 쌍문동 무허가촌 판잣집이 일곱 번 헐리고 일곱 번 다시 짓게 된 사연에 이어,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상계동 달동네 강제 철거 문제, 근래 전태일 고향인 대구 남산동의 재건축 열풍을 소개하며, 해당 지역에 실제 거주하는 철거민이나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법 철학과 법 감정을 비판한다. “정비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시내 역세권 땅을 빈틈없이 노리는 건설사와 다주택 보유자들, 인허가를 남발하는 관청이 맺는 욕망의 오래된 동맹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저자의 말대로 자고 나면 생기고, 자고 나면 올라가는 아파트를 보면 무섬증이 생긴다.

전태일은 인력시장을 통해 공사장 막노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를 떠올리던 저자는 건설현장의 산업재해와 추락사에도 돋보기를 댄다. 2018, “산재 사망자는 2,142, 질병을 제외한 사고 사망 971명의 절반인 485명 건설 현장에서 숨졌다. 사망 사고는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 외주 하청 업체에서 피로가 누적된 주말, 휴일 근무일에 발생했다고 한다. 저자가 따로 언급하기도 했던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인 스물넷 김용균이 안전교육도 받지 않고 일하다가 죽었다. 전태일의 어머니처럼 김용균의 어머니가 거리에 나서고서야 뒤늦게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법제화되었지만 노동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위험은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도 간명하다. 가장 긴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가장 높은 산재 사망률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건설현장 사망자의 상당수는 추락사란다. 3일에 2명 추락사하는 나라에 우린 살고 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공장 굴뚝에서 떨어진 난쟁이 아빠도 따지고 보면 추락사다. 난쟁이 가족은 노동 차별이 없는 삶을 꿈꿨다.

 

제 오랜 꿈은 평등한 사회를 일상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전태일이기도 하고, 난쟁이 가족이기도 하고, 저자 강성규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함을 생각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