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곳과 못난 곳 / 장진돈
잘난 곳과 못난 곳 / 장진돈
잘난 곳보다는
못난 곳이 더 살갑고 좋네
잘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모두가 손님으로 앉아 있을 뿐이지만
못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너나없이 주인처럼 손발이 분주할 수밖에 없다네
그래서 가장 못난 나는
이래 못난 곳으로만 찾아가네
『열과 하나와 둘』, 2020.
감상 – 장진돈 시인의 시집엔 도서번호도 없고 펴낸 곳도 따로 적혀 있지 않다. 시인이 원고를 편집하고 표지를 만들어서 인쇄소에서 어렵지 않게 책 모양을 만들어 냈다. 몇 부를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중에선 판매되지 않을 것이고, 시인이 좋아하는 탁구의 멤버들과 교회 사람들에게 선물로 책을 내주고 있을 줄 안다. 표지 장식을 보면, 본인이 찍은 꽃 사진을 두고 오른쪽과 아래쪽에 세로와 가로로 자신의 이름자 석 자를 박아놓았기에 썩 아름다운 장식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자꾸 보니 정겨운 느낌도 있다.
시인은 잘난 곳에 잘난 사람이 모이는 자리가 불편하다. 그 잘난 자리에서 다들 손님처럼 구는 게 마뜩찮은 것이다. 스스로 잘난 사람은 점잔 빼는 손님이 되고, 어쩌다 잘못 끼인 못난 사람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손님이 되기 십상이다.
못난 곳에 못난 사람이 모이면 주변이 시끄럽긴 하다. 뒤로 빼는 사람도 없고, 할 말 안 하는 사람도 없다. 손님은 없고 다들 주인이 되어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여 열 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로가 서로를 손님처럼 대우해주는 역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남과 다르게 스스로 시집을 내고, 그런 자신을 가장 못난 사람으로 낮추는 시인은 꽤 잘난 사람으로 비친다. 뫼비우스 띠처럼 잘난 것과 못난 것은 연결되어 한몸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나도 잘난 게 아니고, 못나도 못난 게 아니다. 잘난 나를 경계하고 못난 나를 지지하며 시인의 말마따나 못난 곳에서 풍성해지는 삶이면 좋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