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박철 역), 『돈키호테』, 시공사, 2004. (돈키호테 1편 1605년, 2편 1615년)
- 편력기사 영웅담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신이 그런 기사라는 착각에 빠져든 돈키호테. 편력기사로서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한 둘시네아 공주를 위하고, 악을 누르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돈키호테는 모험에 나선다. 꿈꾸는 것에 대한 동경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모험의 주체가 되어 꿈을 행하는 도저한 낭만성이 돈키호테의 매력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낭만의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한다. 돈키호테는 무모하게 돌진하고 철저하게 깨진다.
돈키호테가 행하고 당하는 매번의 장면은 한바탕 활극을 보는 듯 요란스럽다. 돈키호테만큼 비쩍 마른 말인 로시난테와 섬의 영주를 약속받고 종자가 되어 따라간 산초 판사는 주인의 활약에 비례해서 고생을 나누어 가진다.
숱한 에피소드 중 돈키호테가 멋있게 보였다가 결과적으로 실망스럽기도 했던 한 장면을 본다. 첫 번째 모험에 나섰을 때다. 열다섯 나이쯤 되는 소년이 양떼를 잘 돌보지 못하고 밀린 품삯 탓을 하자 농부가 소년을 나무에 묶어두고 매질을 한다. 이걸 지켜보던 돈키호테가 참지 않고 끼어든다. 밀린 품삯이 소년의 말과 다르며 평소에 신발을 세 켤레나 사주기도 했다는 농부의 핑계를 들으며, 돈키호테는 “이 소년이 네가 사준 가죽 신발을 찢었다면 너는 소년의 살가죽을 찢은 거”라며 시인을 방불케하는 말로 감동을 준다. 돈키호테는 품삯을 지불하겠다는 농부의 말만 믿고 소년의 걱정을 뒤로한 채 사라지고 소년은 다시 나무에 묶여 전보다 더 세차게 매를 맞게 된다.
뒷날 소년을 다시 만나게 된 돈키호테는 자신을 다시는 구할 생각을 하지 마라는 소년의 이야길 듣고 민망해한다. 겉으로 생색내고 말로 정의를 세우긴 간단하지만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서 의미 있는 변화를 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돈키호테에서 가장 재미나는 부분은 돈키호테와 산초의 주고받는 대사 부분이다. 산초는 돈키호테를 따라나설 만큼 어리숙하고 한결같이 주인을 위하기도 하지만, 주인의 막무가내 모험에 제동을 걸고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인물이다. 몇 번의 모험과 좌절을 함께한 산초는 “우리가 찾아나선 이 모험들은 우리를 수많은 불행으로 몰고 가서, 제 발로 걸어 돌아가지도 못하리라는 겁니다”라며 쓸쓸한 마무리를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돈키호테는 풍차에 이어 양떼를 적으로 보고 돌진하다가 목동의 돌팔매질에 치아와 옆구리를 강타당하며 쓰러지기도 한다.
돈키호테의 광기가 극에 달하고 소동을 걱정한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 감금되었을 때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영토가 주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중에도 "실천 없는 신념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같은 날 사망한 걸로 알려진, 동시대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창조하며 지독히 사색적인 인간형의 전형을 선보인 것이 비해서 세르반테스는 무모할 정도로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모험적인 인간형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행동하지 못하는 독자들의 가슴을 놀게 한다고 적어 둔다. (이동훈)
책의 삽화는 구스타프 도레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