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 낙동강 37 / 윤일현
고구마
- 낙동강 37 / 윤일현
너의 이름은 정명애
후포 바닷가 가난한 어부의 딸
바닷가 아이답게 거친 피부 까만 얼굴
끝에서 두세 번째 하는 열등생
영어 시간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선생 이야기가
마술사의 알 수 없는 주문처럼 들리는지
멍한 눈으로 창밖만 내다보며
파도 넘실거리는 고향 바다
바다 그리워하던 너
어느 겨울 숙직하던 날
새벽 일찍 문 두드리는 소리에
짜증스럽게 문 열어 보니
선생님 드릴려고 밥하면서 삶았어예
비닐봉지에 넣은 고구마 두 개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고
황급히 사라지던 너의 뒷모습
나 지금 옳은 선생 못 되고 나와
학원강사로 비틀거리며 살고 있지만
그 때 그 고구마 따뜻한 열기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어
나의 갈 길 외롭지 않다
-『낙동강』, 도서출판 사람, 1994.
감상 : 신경림 시인은 동해 후포를 지나면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길』, 1991)라고 읊었다. 통절한 자기반성 끝에 남에게 너그러워지려는 마음을 보이고, 반대로 제 몸에 대해선 파도가 그러하듯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신경림 시인이 후포를 다녀가기 수년 전, 후포의 어느 학교에 윤일현 시인이 영어교사로 교직 생활을 했었나 보다. 다들 가난한 어촌의 제자들이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거친 피부, 까만 얼굴에 영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를 떠올린다. 집집이 형편이 다르겠지만 80년대 어촌에서 여자아이도 고기잡이 일의 뒷마무리를 돕고, 집의 일을 거드는 게 예사였겠다. 생활에 밀려 공부할 때를 놓친 아이에게 영어는 순수 외국말 자체였을 것이니, 정명애가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쫓아가는 건 무리다. 그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고 하더라도 교사로서 그 아이들을 도울 방법도 딱히 마땅찮았을 것이다.
한때의 귀한 인연이더라도 세월 따라 무심히 지나오고 더러 잊히기도 하는 것인데 윤일현 시인은 가슴에 찍힌 기억을 상기하며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수업을 힘들어하며 한눈을 팔던 아이가 그 영어 선생님을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고” 간 고구마 두 개의 열기가 그의 삶의 온도를 확 지펴주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가 보여준 정과 신뢰를 온전히 담아서 자신의 교육도 그 아이들에게 같은 온도로 갚아야 할 것이란 생각도 했을 것이다.
윤일현 시인이 이후 어떤 길을 걸었는지 알지 못하나 고구마 두 개를 애써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좋게 와 닿는다. 후포에서, 신경림 시인은 자신에게 맵고 모진 매를 들으려고 했고, 윤일현 시인은 고구마 두 개의 열기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두 분의 시구에서 문득, 공자가 말하고 안중근이 따랐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란 문구가 생각난다. 이로움을 보면 의를 생각하란 것인데, 그 의로움(義)은 선한 것(善 혹은 羊)을 자신(我)이 스스로 지키는 것(戈)으로 풀이할 수 있다. 후포 바다에 가면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번씩 왔다 갔다 할 거 같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