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톰소여와허크 2020. 9. 10. 22:26

카일라스 가는 길 / 정형민 감독 (2020)

 

 

여든 중반의 어머니와 오십이 된 아들이 먼 나라까지 여행을 함께 떠났다. 어머니는 이국의 경치에 감격하기도 하고 언어의 벽이 무색하게끔 그곳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한다. 장시간 차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수시로 몸을 푸는 운동을 시범 보이는 중에도 카메라를 신경 쓰는 노련미를 보이기도 한다. 어머니는 노트에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데 열심이고, 감독인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영상에 담는 것을 즐긴다.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여행 자체도 흥미를 주지만 얼핏 별나 보이는 모자간의 이야기가 별나지 않게 펼쳐지는 것도 이 영화의 재밋거리다.

티베트를 경유하여 아프가니스탄 방면의 파미르를 넘어가는 대목에서 어머니는 처음 약한 모습을 보인다. 낭떠러지를 옆에 둔 울퉁불퉁한 길을 끝없이 지나며,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다는 어머니의 독백은 어머니 의사와 상관없이 관객에게 잔잔한 웃음을 일게 한다.

카일라스는 전설 속 수미산의 대상으로도 알려져 있다. 불교나 힌두의 신들이 인간에게 가장 가깝게 내려오는 곳이지만 거꾸로 인간이 가장 닿기 힘든 땅이기도 하다. 얼음 절벽을 누워서 건너기도 했던 어머니는 어디쯤에선가 멈춰서 아들과 나란히 앉는다.

카일라스는 세상의 중심이란 의미도 있다는데 그 중심이란 것도 내가 인정을 해야 생긴다. 어머니와 아들이 중심이 되면 카일라스는 그저 배경이 될 뿐이다. 카일라스는 더 갈 수 없는 길의 마지막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의 한때일 뿐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는 끝나고 어머니는 집이 있는 봉화로 돌아가서 좀 더 늙으셨겠다. 아마도 두 주인공은 카일라스보다 푸근한 청량산에서 아직 걷지 않은 길에 대한 모험으로 가슴이 놀기도 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