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마음을 꿰매는 신기료장수 / 곽도경

톰소여와허크 2020. 9. 26. 23:26

마음을 꿰매는 신기료장수 / 곽도경

 

대명1동 사무소 앞

골목길 구석

신기료장수 할아버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밑창 고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끌고 다녔던 내 구두

덜컥 덜컥 소리 내며 다가가

할아버지 단잠 깨운다

 

굽갈이해야 할 시기를 놓친 시간만큼

기울어지고 패인 구두의 상처

때 묻고 거친 손길이 붙이고 갈고닦아 새 살 돋는다

 

갈라지거나 비틀림 없이

벌레와 화재에도 강한 오동나무

옛사람들은 딸 낳으면 오동 한 그루 심었다는 말씀

그 귀한 나무로 만든 신발 신고 있으니

손님은 참 귀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는 말씀

 

사람들 속에서

찢기고 뜯긴 마음

한 올 한 올 꿰매어 준다

 

-『오월의 바람』, 두엄, 2020.

 

감상 : 신기료장수는 헌 신을 고치는 직업이다. 신기료란 말은 얼핏 한자어를 연상케 하지만 신을 수리하는 장수가 동네를 돌면서 “신을 기워요”라고 외친 데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인은 직장 일을 하면서도 시 창작, 낭송, 그림, 시화, 벽화 등 다방면에 열정을 쏟고 지낸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인정을 내고,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부지런한 주인을 둔 덕분에 구두는 굽 갈 때를 놓치고 덜컥 소리까지 내고서야 수선을 위해 신기료장수에게 맡겨진다. 때마침 시인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또 그만큼 이야기를 듣는 중에 속상한 일을 당하거나 심신이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시인에게 신기료장수는 구두를 맞춤으로 수선해주는 장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찢기고 뜯긴 마음”까지 꿰매고 기워주는 마음 치료사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기료장수의 눈썰미는 시인의 신발이 오동나무 재질인지 알아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딸을 위한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린 신기료장수는 “손님은 참 귀한 사람입니다”라고 시인의 자존심을 한층 추켜준다.

맘 같지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기는 게 세상살이다. 그럴수록 자신을 스스로 지지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사실, 스스로에 대한 지지도 남으로부터의 인정과 신뢰와 지지로부터 싹트게 되어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신기료장수처럼 상대의 인정할 만한 일을 인정해주는 일이 곧 선업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또 생각해보면, 좋은 일 하는 장본인이 신기료장수인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구두 수선하는 시간 자체도 만남과 배움의 시간으로 고맙게 여길 줄 안다. 시인은 사소한 만남을 귀한 시간과 특별한 인연으로 만드는 남다른 재주를 가진 게 분명하다.

앞서 신기료란 말의 어원을 짚어봤지만, 신을 깁고 마음을 기워서 마침내 공중으로 뜨게 하는 ‘신기한 요(마법 융단)’란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아닌 게 아니라 시인은 “밤마다 벽을 부수는 / 꿈을 꾸는 여자”(「자화상」중)를 자처하며 세상을 재미나게 칠하는 작업에 몰두해 있다. (이동훈)

 

신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