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톰소여와허크 2020. 10. 18. 21:00

최인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범우, 2014.

 

 

광장(1960)의 작가 최인훈의 희곡이다. 1969온달, 온달이 죽게 된 배경을 파헤친 온달2’를 발표하고 그 중에 온달을 일부 개작하여, 197011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제목으로 공연했다.

아마도, 같은 제목의 김환기의 그림이 그해 한국미술대상 전람회에 출품되어 6월경에 대상을 받았으니, 그 그림에 대한 인상이 남았다가 연극 제목으로 차용했을 것이다.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성북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즐겨 읽으며 마지막 시구를 빌려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노래가사가 되어 유심초의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김환기 사후, 환기재단에서 출간한 김환기 에세이의 제목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05).

 

김부식의 삼국사기온달편은 비교적 간단하다. 초반부는 울보 평강공주를 달래기 위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평원왕(평강왕)의 말을 식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공주가 집을 나가 온달과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최인훈은 이 이야기의 배경을 재해석한다. 공주가 권력 구도에서 밀려났으면서도 안전하게 몸을 구할 수 있는 비구니가 되기를 거부하고 성 밖에서 재기를 도모하는 걸로 보았다. 온달은 공주가 재기하기 위해 선택한 인물이다.

또 삼국사기에선 부마가 된 온달이 신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가 아차산에서 전사하는 걸로 나오지만, 최인훈은 고구려 내부의 권력 암투로 인해 온달이 희생되는 걸로 그렸다. 온달을 죽인 장수들은 중국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겉으로는 왕을 받든다. 하지만 인도로 직접 가서 불법을 얻고 나라 간 평화를 얻으려는 왕의 계획을 좌절시키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약해질 위험을 방치하지 않는다.

뒤늦게 온달의 죽음에 왕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 공주는 그 사람의 미지근한 태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태를 그릇 판단했는지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공주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상황을 주도할 의욕을 갖고 있지만 그걸 두려워한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온달과 평강공주는 억울하게 죽었다. 최인훈의 또 다른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6)도 아기장수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고 있다. 마을의 피해를 줄이고 아기를 뺀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 아버지는 자식의 어린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는다. 이러한 선택에 동의하지 못한 최인훈은 아내가 스스로 목을 매달게 하고 남편이 뒤따르는 것으로 비극을 더 비극적으로 처리한다.

 

역사적 배경과 그 해석이 묵직하게 다가오게끔 하면서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제목만큼은 더할 수 없이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온달과 평강공주뿐만 아니라 지난 존재, 현 존재, 촘촘히 엮인 인연의 그물망 속에 이다음에 오는 인연을 지금 짓고 있는 것임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정신이 번뜩 드는 느낌이다.

 

김환기는 1970127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김환기는 점 하나 하나 찍으면서 지난 모든 인연에 고마워했으며, 최인훈은 마침표를 찍고도 소설을 여러 번 개작했다. 자신이 짓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읽는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희곡(연극)으로, 소설로, (노래), 선과 점(그림)으로 확장되면서 사람들에게 자꾸 되살아나는 질문이다. 더러 술을 마실 때 이 질문이 진지해지는 경향도 있지만 대답은 둘 중 하나 같다. 가볍거나 궁하거나.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