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책꽂이 투쟁기

톰소여와허크 2020. 11. 30. 21:50

김흥식, 책꽂이 투쟁기, 그림씨, 2019.

 

 

- 책 읽기와 책 쓰기를 주업으로, 출판사 운영을 부업으로 하는 저자다. 주업과 부업이 바뀌어도 상관없겠다. 출판 일도, 읽고 쓰는 일도 책과 불가분의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책꽂이 투쟁기는 책에 대한 소개며 기록이지만, 그 소개와 기록(쓰기)은 책 읽기의 부산물일 수밖에 없다. 기록의 과정에 책 읽는 사람의 개인사와 인생관이 묻어나는 건 읽기의 또 다른 재밋거리다. 남의 책꽂이를 엿보는 것 또한 즐겁기만 하다.

책꽂이에, 책을 모셔 오기 위해선 우선 책값을 벌어야 한다. 밥값 아껴 어렵게 구입한 책을 안 읽고 쌓아두는 건 면목이 안 선다. 읽고 싶은 책은 늘어나고 소용되는 시간은 한계가 분명하다. 저자는 그 간격을 간독으로 줄인다. 저자가 말하는 간독은 필요한 부분은 꼼꼼하게, 불필요한 부분은 수월하게 건너뛰는 독서법이다. 저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그렇게 간독했다. 저자는 잡학이라 불러도 무방한 백과사전식 지식에 욕심을 내고 나중엔 아예 본인이 세상의 모든 지식이란 책까지 내며 중간 정산을 한다.

책꽂이 책들은 잡학을 추구하는 저자의 성향이 반영되어 다양하다. 소설 동의보감(이은성)에 재미를 느껴 아껴서 읽는가 하면, 음악을 찾아서(이순열)에 푹 빠져 지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이 어떤 죽음을 슬퍼하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틀어놓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리처드 로빈슨, 김병순 역)를 읽고 폭력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 이런 감추어진 본질을 고작 40,000원을 투자해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소중한가!” 감탄하기도 한다. 얼마 전 50,000원이 아까워 내가 놓친 책도 덩달아 생각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반시 동인, 5월시 동인, 목요시 동인의 시집을 두루 지나왔고 군대에서 시 엮음집을 간이 책자로 만들어 보급한 경험도 있다. 한국의 연인들을 비롯한 곽재구의 시편과 시집은 저자가 시인의 길을 접게 만든 책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미리 만난 게 행인지 불행인지 누구도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불평등의 경제학(이정우)에선 공짜 점심은 있다 없다를 다툰다. 정말로, 세상에 공짜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다들 없다고 할 때 있다고 말하는 저변에는 책의 영향이 클 것이란 생각은 든다. 자신의 생각을 깊게 하고 조정해주며 더 나은 삶의 길을 슬쩍 비추는 것으로도 책의 쓸모는 끝이 없다.

책꽂이 하나는 세상 일면이다. 책의 가치를 생각하면 책은 정가로 팔지만 공짜나 마찬가지다. 책은 읽으면 남는다. 그러니 저자의 끝말처럼 좁디좁은 곳에 파묻혀 자기 등조차 보여주지 못한 채 꽂혀 있고 쌓여 있는 책들은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내 작은 책꽂이도 먼지투성이다. 에구!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