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이의진,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행성B. 2020.
- 오남매 맏이인 저자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로 시작된 이야기는 주로 저자가 이삼십 대에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연애를 제대로 못하고 결혼했다고 하지만, 많지 않은 연애담에 저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당사자에겐 아픈 기억일지 모르겠지만 독자에겐 재미난다. 형편이 괜찮은 남자 친구가 밥을 많이 샀기에, 밥을 한번 사겠다는 저자의 말에 행복해하며 여자 친구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서 라면을 굳이 먹겠다고 했던 게 남자의 실착이 되고 말았다. 저자의 말대로 순수하고 고운 청년이었지만 매일 라면을 먹다시피 한 여자와, 어쩌다 한 번 라면을 먹어주는 남자의 차이를 그때의 저자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꼈나 보다. 저자는 이후 라면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또 한 명의 불운한 사내는 해물탕을 너무 소리 나게 먹어서 저자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 어떤 이는 맛있게 먹어주는 걸 든든해하고 편하게도 생각할 텐데 저자는 그냥 싫었단다. 지금의 남편도 알고 보니 음식을 그렇게 먹더란 얘기도 덧붙이긴 했다.
저자는 일상을 흥미롭게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슬픔과 공감의 마음이 스미게끔 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단순한 글 솜씨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과 결부되어 있다. 반대로 그런 마음이 결여된 이기적 세태에 대해 저자 나름의 차가운 채찍을 동반하고 있다. 한쪽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맞이하면서, 그 고양이를 병신이란 말로 혀를 차는 중늙은이를 참지 않는다. 직원이 좋아하는 밀크디 골드를 치사하게 숨기면서 함부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을 “기록과 작렬하는 뒤끝”으로 망신을 주면서, 누구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고 항변한다.
어제오늘의 바깥 날씨는 기록적인 한파의 연속이지만, 오늘의 인생 날씨는 스스로 쓰기 나름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