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톰소여와허크 2021. 3. 11. 01:18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현암사, 2013.

 

 

- 나쓰메 소세키는 어릴 적 양자로 입양되었다가 양부의 죽음 후 열 살 무렵 생가로 돌아오고, 스무 살이 지나서야 나쓰메라는 성을 찾는다. 소설 속 고양이 주인으로 나오는 구샤미 선생은 위장병을 앓고 신경증도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이다.

출세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집에 든 검은 고양이를 내쫓지 않고 아내와 함께 키우면서 생긴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쓰메 소세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물론 소설에 무수하게 인용되어 있는 독서 경험을 고려하면, 책 읽기가 글쓰기의 첫째가는 동력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소설 속 고양이는 그레이의 시(Ode on the Death of a Favorite Cat, Drowned in a Tub of Goldfishes,1748)에 나오는, 금붕어를 노리는 고양이 정도는 된다고 자부한다. 관련 시를 검색해보면, 어항 속 금붕어를 잡으려다가 실족하여 고양이가 죽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고양이의 최후는 황금을 탐내다가 몰락하게 되는 여인의 삶과 견주어진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시를 제목만 언급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유독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이웃집 부부가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자가 된 집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결정적으로, 소설 속 고양이도 맥주에 취해 항아리에 발을 헛디디고 풍덩 빠지고 만다.

철학하는 고양이의 최후 치고는 다소 썰렁하다. 또한 본문 중 외모를 웃음 소재로 삼는 유치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봐도 번득이는 문장이 있다. 하늘과 땅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기여한 공로는 없다는 말끝에 고양이는 이렇게 전한다.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 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제곱미터로 나누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공기는 나누어 팔 수 없고 하늘에 새끼줄을 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토지의 사유 역시 불합리하지 않은가

 

고양이 입을 빌린 나쓰메 소세키의 생각이다. 자연이 준 땅을 왜 인간이 소유하고, 등기하고, 거래하면서 땅 부자를 만들고 땅 부자만 땅땅거리며 살게 하는지 정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감이 결여된 구샤미 선생은 이마저 관심이 없을 듯하다. 읽지도 않는 책을 잠자리에 들고 가는 것이나, 읽어도 2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자는 것은 고양이가 보는 구샤미 선생의 모습이지만 요즘 내가 꼭 그렇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