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현암사, 2013.
- 나쓰메 소세키는 어릴 적 양자로 입양되었다가 양부의 죽음 후 열 살 무렵 생가로 돌아오고, 스무 살이 지나서야 나쓰메라는 성을 찾는다. 소설 속 고양이 주인으로 나오는 구샤미 선생은 위장병을 앓고 신경증도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이다.
출세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집에 든 검은 고양이를 내쫓지 않고 아내와 함께 키우면서 생긴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쓰메 소세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물론 소설에 무수하게 인용되어 있는 독서 경험을 고려하면, 책 읽기가 글쓰기의 첫째가는 동력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소설 속 고양이는 그레이의 시(「Ode on the Death of a Favorite Cat, Drowned in a Tub of Goldfishes」,1748)에 나오는, 금붕어를 노리는 고양이 정도는 된다고 자부한다. 관련 시를 검색해보면, 어항 속 금붕어를 잡으려다가 실족하여 고양이가 죽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고양이의 최후는 황금을 탐내다가 몰락하게 되는 여인의 삶과 견주어진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시를 제목만 언급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유독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이웃집 부부가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자가 된 집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결정적으로, 소설 속 고양이도 맥주에 취해 항아리에 발을 헛디디고 풍덩 빠지고 만다.
철학하는 고양이의 최후 치고는 다소 썰렁하다. 또한 본문 중 외모를 웃음 소재로 삼는 유치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봐도 번득이는 문장이 있다. 하늘과 땅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기여한 공로는 없다는 말끝에 고양이는 이렇게 전한다.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 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제곱미터로 나누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공기는 나누어 팔 수 없고 하늘에 새끼줄을 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토지의 사유 역시 불합리하지 않은가”
고양이 입을 빌린 나쓰메 소세키의 생각이다. 자연이 준 땅을 왜 인간이 소유하고, 등기하고, 거래하면서 땅 부자를 만들고 땅 부자만 땅땅거리며 살게 하는지 정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감이 결여된 구샤미 선생은 이마저 관심이 없을 듯하다. 읽지도 않는 책을 잠자리에 들고 가는 것이나, 읽어도 2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자는 것은 고양이가 보는 구샤미 선생의 모습이지만 요즘 내가 꼭 그렇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