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론강
이인휘, 『부론강』, 목선재, 2020.
내게 부론은 거돈사지로 기억된다. 조용미 시인은 거돈사지를 천년 된 느티나무의 성지로 보았으며, “그 폐허의 비밀을 읽다 돌아간 사람들의 눈빛은 얼마간 / 갈라진 삼층석탑과 석축을 뚫고 뿌리 뻗은 저 느티나무나 /쓰러진 당간지주를 닮아 있으리라”(「느티나무의 몸속에는」)고 노래했다. 오래전 이 시를 읽고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를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의 눈빛을 스스로 잴 순 없는 일이나 조용미 시인이 옳았다고 지금껏 여기고 있다.
이번 『부론강』은 바깥세상에서 부론으로 찾아들고 이곳에 정착하여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지역 시장에 참여하여 공생을 도모하고, 달집 태우기 등 공동체 문화 복원에도 애를 쓰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은 사진을 찍었으나 더 이상 사진기에 손을 대지 못하는 여자와 한때 노동운동을 하고 시를 썼으나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남자가 이 부론에서 만나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사진기를 잡은 여자는 남자를 데리고 은섬포 있는 부론강에서, 수수께끼 같은 거돈사지에서, 고개 너머 법천사지에서 셔터를 누르고, 남자 역시 사진에 어울릴 만한 글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스무 개의 돌계단을 밟고 거돈사지 터에 발을 내디딜 때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광활한 터가 초록의 산으로 둘러싸여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는 거돈사지 풍경은 내가 처음 갔을 때의 인상 그대로다. 천년 느티나무의 잎이 팔랑거리는 모습을 보고 여자는 이렇게 보탠다. “‘아, 예뻐라’, ‘아, 예뻐라’ 감탄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뭇잎들이 느티나무 할아버지 눈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 순간 수만 개의 무성한 나뭇잎들이 천년을 기억하는 나무의 눈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대요.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지 제풀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니까요.”라고. 이 장면은 마치 조용미 시인의 감성을 빌려 쓴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은 적잖은 시를 인용하고 있다. 남자가 지갑에 품고 다닌 시는 김남주 시인의 「자유」다. 그 첫 구절은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다. 자유가 보수의 첫 번째 가치로 꼽히는 이즈음, 체제 수호의 자유 말고도 김남주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보수가 수용한다면 살 만한 세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론에 모여든 사람들 얼굴이 빛나 보이는 이유는 물질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데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여자는 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한다. 서로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 때문일 거란다. 달집 태우기 행사 중 사물놀이 꼭두쇠가 매긴 마지막 목소리는 “평등세상 살고지고, 평등세상 살고지고!”다.
평등 세상은,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에 새겨져 있다는 미륵 사상을 떠올리게 한단다. 또한 평등 세상은 부론에 비석이 있다는 손곡 이달과 그의 제자 허균이 함께 꿈꾼 세상이다. 생각건대, 김남주가 그렇게 바라던 ‘평등의 나무’(「나의 칼 나의 피」가 결실한 세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세상에 닿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녀가 기울지 않는 사랑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김남주 시를 지금도 품고 살 것이다.
이인휘의 『부론강』을 읽고, 거돈사지 입구에 닿으면 느티나무도 석탑도 돌멩이도 풀도 평등하게 주인 노릇 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