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음악을 찾아서

톰소여와허크 2021. 3. 21. 23:40

이순열, 음악을 찾아서, 삼민사, 1979

 

『책꽂이 투쟁기』의 김흥식이 『음악을 찾아서』(이순열)를 책꽂이에 귀하게 모셔둔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가 구례 ‘섬진강 책 사랑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공교롭게 이순열의 고향이 구례란 것도 신기하다.

이순열의 음악 사랑은 유난하다. 어렸을 때의 꿈이 세상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음악은 “일상성에 갇혀 질식하는 우리의 넋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우리의 메마른 정서에 단비를 뿌려 푸르름이 풍요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순열은 바흐나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바흐에 대한 전기와 함께 슈바이처나 베토벤의 평을 옮기면서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거대한 음악의 숲속으로 몰입되는 경험을 하게 된단다. 바흐와 관련된 곡과 공연과 책과 영화를 두루 소개하는 인문학적 지식은 모차르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세속적인 행복과 예술적인 승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예사이다. 그러나 참다운 창조자는 어떤 불행한 처지에서도 예술적인 목표를 충족시킨다는 행복감을 의식하는 것이다”며 모차르트의 가난과 삶을 이해했다고 한다. 이순열은 여기에 더해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서 웃고 있는 자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믿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을 잃고 말 것이다”라고 보탠다.

첼리스트 카잘스가 바흐에 대해 바친 존경과 연주에 관한 얘기에서 문득 김종삼의 「첼로의 PABLO CASALS」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얻은 것도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시를 옮겨본다.

 

나는 술꾼이다 낡은 성곽 보좌에 앉아 있다 정상이다 쾌청하다

WANDA LANDOWSKA

J․S BACH도 앉아 있었다

 

사자 몇 놈이 올라왔다 또 엉금 엉금 올라왔다 제일 큰 놈의 하품,

모두 따분한 가운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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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시체이다 첼로의 PABLO CASALS

 

- 「첼로의 PABLO CASALS」전문

 

반도 란도프스카는 바흐 음악을 원음에 가깝게 쳄발로 연주로 녹음한 사람이고, 카잘스는 바흐를 가장 널리 알린 사람이다. 헌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필사본을 발견한 후 “그 때부터 그는 그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0년이 넘은 오랜 연구 끝에 그는 비로소 그 작품을 공개 연주했다. 그러나 최초로 녹음한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인 1936년, 그가 60세가 되어서였다. 한 작품을 녹음하는 데 40년 이상의 준비를 갖춘 예는 일찍이 없었고, 그가 연주 녹음한 바흐의 첼로 조곡은 수많은 음반 중에서도 가장 드높은 위치를 지금껏 견지하고 있다”고 이순열은 말한다.

김종삼이 이 시를 쓸 때는 잦은 음주로 인해 「투병기」를 연하여 쓸 만큼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그런 중에 카잘스의 첼로 조곡을 들으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 듯한 느낌이다. 시에 인용된 사자는 동물( 獅子)로 표시되어 있지만 저승사자(使者)의 의미가 자연스럽긴 하다. 좀 엉뚱하기도 한 김종삼식 유머로 보인다.

이순열은 모든 연주자들이 카잘스 제안을 진지하게 음미해 보기를 원한다. 그가 소개한 구절이 눈에 남는다. 연주가에게 남긴 얘기지만 예술한다는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말로 들린다.

“연주가는 눈앞에 있는 악보를 통해서 객관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악보를 낳게 한 넋의 상태를 재구성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순열의 『음악을 찾아서』를 김종삼과 함께 책꽂이에 두려고 하나 작은 책꽂이에 더 꽂을 데가 없다. 김흥식이 말한 책꽂이 투쟁기와 규모는 달라도 골방 책꽂이 투쟁기는 진행 중이다. (끝)